생각한 연애와 결혼
(龍淵)용이 사는 연못
30년을 수원에서 살았지만,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수원화성에는 아직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조명에 비친 하천이 반짝이고, 용지대월의 전설이 귓가에 맴돌 때. 문득 20대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곳에서 데이트를 했었다. 손을 잡고 성곽길을 걸으며, 화홍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본 달빛에 설레었던 기억들. 그 시절의 그는 어디로 갔을까? 옆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따라오는 남편을 보며,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연애할 때는 모든 것이 특별했다.
같은 장소라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고, 작은 발견들도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있었다.
수원화성의 돌 하나하나에도 우리만의 추억이 스며들었다.
"여기서 처음 손 잡았지?" "이 벤치에서 이야기하다가 밤이 다 갔었지?"
"화홍문 앞에서 찍은 사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
그때는 상대방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그의 관심사에 나도 관심을 가졌고, 나의 이야기에 그가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결혼 후의 현실은 달랐다.
"또 나가자고? 집에서 쉬면 안 돼?" "해설사 이야기는 뻔하잖아.
그냥 빨리 둘러보고 가자." "주차비만 얼마야. 집 근처 산책하는 게 낫겠다."
같은 장소, 같은 프로그램인데도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억지로 끌려 나온 듯한 표정,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듯한 태도. 나는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에게는 그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1. 호기심의 소멸 연애할 때는 서로에 대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다 아는 사이'라는 착각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멈춘 건 아닐까?
2. 감사의 부재 연애할 때는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선물이었다
. 하지만 결혼 후에는 당연한 일상이 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3. 개별성의 상실 '우리'가 되면서 '나'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되면서, 진정한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4. 소통의 단절 연애할 때는 작은 것 하나하나도 공유했는데, 결혼 후에는 "말해봤자 이해 못 할 텐데"라는 체념이 생겼다.
야행 프로그램을 통해 본 수원화성은 정말 아름다웠다. 조명기술의 발달로 예전보다 훨씬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해설사의 전문적인 설명으로 역사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관광 콘텐츠로서의 완성도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런데 우리 관계는 왜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어지고 아름다워져야 할 관계가, 왜 점점 메말라가고 있을까?
투어가 끝나고 남편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 것을 보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일까?
수원화성이 세월을 거치며 더욱 빛나는 것처럼, 우리 관계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되찾자
함께하는 시간에 감사하자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자
소통을 포기하지 말자
연애할 때의 그 설렘을 되찾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깊고 성숙한 사랑으로,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용지대월, 용연에 비친 달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다시 아름다운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작게 말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네."
작은 한 마디였지만, 오랜만에 들어본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수원화성의 야경처럼, 우리 관계에도 다시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
30년을 살아온 수원에서, 결혼 20년 차에 새롭게 깨닫는다.
사랑도 문화유산처럼 보존하고 가꿔나가야 할 소중한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