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함께 숨 쉬는 민족의 이야기
서양에서 칡은 "악마의 덩굴(Devil's Vine)"이라 불린다.
뿌리내리면 산을 덮고, 집을 삼키고, 전봇대조차 숨 막히게 감싸며 뽑아도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미국 남부에서는 매년 수십억 달러를 들여 칡과 전쟁을 벌인다.
그들에게 칡은 재앙이자 침입자다.
하지만 우리에게 칡은 어떤 존재였던가.
춘궁기가 되면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산으로 향했다.
칡뿌리를 캐는 것은 하나의 의식이었다.
땅속 깊이 뻗은 뿌리를 따라 삽질하고, 호미로 파내고, 때로는 맨손으로 흙을 긁어내며 보물 찾기를 했다.
그렇게 캐낸 칡뿌리는 단순한 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고, 생명이었고, 달콤한 위안이었다.
칡뿌리를 씹으면 입안에 은은한 단맛이 퍼졌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 자연이 선사한 최고의 간식이었다.
어머니들은 칡뿌리를 곱게 갈아 전분을 내어 칡죽을 끓였고, 칡즙을 내어 아픈 아이의 열을 식혔다.
겨울이면 갈근차 한 잔이 온 가족의 목을 촉촉하게 적셨다. 칡은 단순히 구황식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명력 그 자체였다.
한의학에서 갈근(葛根)은 발한해열, 생진지갈의 효능을 가진 귀중한 약재다. 감기에 걸렸을 때,
목이 말랐을 때, 술에 취했을 때까지 칡은 만능 치료제였다.
서양인들이 "악마의 덩굴"이라며 두려워하는 그 생명력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축복이었던 것이다.
질경이 역시 마찬가지다.
'Plantain'이라는 서양 이름을 가진 이 풀은, 영어권에서는 "길 옆의 잡초"로 여겨진다.
잔디밭에 자라면 제초제를 뿌리고, 화단에 보이면 뽑아버리는 그저 성가신 풀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 질경이를 "차전자(車前子)"라 불렀다.
수레가 지나가는 길 앞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풀이라는 뜻이다.
질경이의 생명력은 경이롭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 소달구지가 지나가도 다시 일어선다.
그 질긴 생명력을 우리 조상들은 약으로 삼았다.
베인 상처에 잎을 으깨어 붙이면 지혈이 되고, 종기가 나면 짓찧어 붙였다.
기침이 날 때는 질경이를 달여 마셨고, 봄이면 어린잎을 뜯어 나물로 무쳤다.
특히 질경이 씨앗인 차전자는 한의학의 보약이었다.
이뇨작용을 돕고 간을 보호하며, 눈을 밝게 한다고 여겨졌다.
현대 과학도 질경이의 효능을 인정한다.
항염, 항균, 상처 치유 효과가 실제로 입증되었으니,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호미.
이 작고 굽은 도구 하나에 우리 민족 5천 년의 농업 철학이 담겨 있다.
서양의 농기구들을 보라. 호(hoe), 스페이드(spade), 트로월(trowel)... 모두 직선적이고 기능적이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대량으로 처리하기 위한 도구들이다.
하지만 호미는 다르다.
호미의 그 절묘한 곡선은 인체공학의 걸작이다.
손목의 각도에 맞춰 굽어져 있어 장시간 사용해도 피로하지 않다.
날의 각도는 우리나라 토양의 특성에 맞춰 계산되었다.
끝이 뾰족해서 잡초의 뿌리까지 정확히 파낼 수 있고, 날이 넓어서 흙을 골라낼 수도 있다.
하나의 도구로 파기, 캐기, 다지기, 고르기까지 모든 작업이 가능하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물던 서양인들이 가드닝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의 호미를 발견했다.
그들은 호미를 "K-Homi"라 부르며 열광했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완벽한 도구가 없었을까?" "이 하나면 다른 도구가 필요 없다!"는 감탄이 쏟아졌다.
아마존에서는 한국산 호미가 품절 사태를 빚었고, 서양의 원예 전문가들이 호미의
우수성을 논문으로 발표하기까지 했다.
호미는 단순한 농기구가 아니다.
그것은 땅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서양은 트랙터로 넓은 들판을 갈았지만, 우리는 호미 하나로 좁은 밭고랑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일구었다.
기계는 빠르지만 거칠다.
호미는 느리지만 섬세하다.
기계는 흙을 뒤집는다.
호미는 흙과 대화한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난했던 시절, 우리 조상들에게는 "먹을 건 다 먹어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버리는 것이 없었다.
나무껍질을 벗겨 구황식품으로 삼았고, 풀뿌리까지 캐서 굶주림을 달랬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발견들이 이어졌다.
도토리는 떫은맛을 빼는 과정에서 도토리묵이 되었고, 칡뿌리는 전분으로 변신했다.
무는 시래기로 말려 겨울 반찬이 되었고, 배추는 김치로 발효되어 비타민 C의 보고가 되었다.
콩은 메주가 되고 된장이 되어 단백질과 감칠맛을 제공했다.
고추장, 간장, 젓갈까지... 우리의 발효 기술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과학이었다.
서양의 드레싱과 소스들을 보라. 마요네즈, 케첩, 머스터드... 모두 취향을 위한 조미료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장류들은 다르다.
그것들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고, 영양을 위한 과학이었으며, 맛을 위한 예술이었다.
된장 하나만으로도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을 모두 섭취할 수 있었다. 김치는 유산균의 보고였고,
젓갈은 아미노산의 집합체였다.
계절을 저장하는 지혜도 놀랍다.
여름에는 장아찌를 담그고, 가을에는 김장을 했다.
봄나물은 데쳐서 말렸고, 겨울무는 동치미로 익혔다.
냉장고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음식을 보관하고 발효시키는 기술을 터득했다.
이는 단순한 저장법이 아니라, 계절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생활 철학이었다.
현대 영양학이 발달한 지금에서야 김치의 유산균, 된장의 이소플라본, 미역의 요오드 성분 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과학적 분석 없이도 몸으로, 경험으로, 지혜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 음식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K-푸드의 인기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5천 년 동안 축적된 우리 민족의 생존 지혜와 건강 철학이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 셰프들이 김치를 "슈퍼푸드"라 부르고, 유럽의 영양학자들이 된장의 효능을 연구한다.
일본의 장수 마을 오키나와에서도 된장과 유사한 발효식품을 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호미 한 자루, 밟고 지나가던 질경이 한 잎, 덩굴져 올라가던 칡 하나조차도
조상들은 놓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생존의 도구였고, 치료의 약재였으며, 삶의 지혜였다.
이것이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다.
땅을 사랑하고, 자연과 조화하며, 아껴 쓰고 나눠 쓰는 삶의 철학. 빠름보다 정성을, 효율보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했던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 한 톨의 곡식도, 한 잎의 풀도 소중히 여겼던 그 마음가짐.
현대 문명이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로 위기에 처한 지금,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더욱 빛을 발한다.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 지속가능성... 지금 전 세계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우리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실천해 왔다.
이 얼마나 찬란한 유산인가.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혜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민족인가.
호미를 잡고 밭을 일구던 할머니의 손, 질경이를 뜯어 상처에 발라주던 어머니의 사랑, 칡뿌리를 캐서 아이들 배를 채워주던 아버지의 땀... 그 모든 것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 후손이다.
그 피가 우리 안에 흐르고, 그 지혜가 우리 DNA에 새겨져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소중한 유산을 지키고, 이어받고,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이다.
호미의 곡선 속에 담긴 인체공학을, 칡뿌리 속에 숨겨진 자연의 약효를, 질경이에 담긴 질긴 생명력을...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자랑스럽게 간직해야 한다.
세계가 우리를 주목한다. K-컬처, K-푸드, K-뷰티... 그 모든 것의 뿌리는 바로 여기, 흙과 함께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서 나왔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우리는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우리는 세계가 배우고 싶어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호미와 칡, 그리고 질경이... 그 작은 것들 속에 담긴 큰 진리를 우리는 이제 안다.
오늘도 농사를 지으시는 80 넘으신 시아버지를 보면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