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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너머의 인생들

세대명부 사인 받으러 다니기


초인종과 함께 시작되는 하루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각 층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하루가 시작된다.

"전단지 붙이지 마세요"

첫 번째 만나는 건 저 익숙한 경고문이다. 하지만 정작 문 앞에는 택배 상자들이 피라미드처럼 쌓여있다.

자전거와 유모차가 복도를 점령한 집,

벨이 고장 나서 문을 두드려야 하는 집,

그리고 조심스럽게 붙어있는 **"아기가 자고 있어요. 벨 누르지 마세요"**라는 당부문까지.


현관문이 말해주는 이야기들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한 현관을 가진 집이 있는가 하면, 우리 집처럼 우산부터 신발까지 널브러져 있는 곳도 있다. 문을 열기도 전에 그 집의 이야기가 눈에 그려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방화문의 무게가 주는 교훈

한 층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느끼는 건, 방화문의 두께다. 어떤 집은 문이 너무 무거워서 열기조차 힘들다.

반대로 어떤 집은 방화문이 가볍게 열린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게 아닐까?

벨을 눌러도 안에 사람이 있는 걸 알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집들. 마치 마음속에 방화문을 단단히 잠가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천차만별, 사람들의 반응

하지만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난다.

활짝 열어주시는 분: 문을 활짝 열고 문고리까지 고정해 놓으신 채 정성스럽게 서명해 주신다


조심스러운 분: 문을 아주 조금, 서류만 들어갈 정도로만 열어주신다


신중한 분: "누구세요?" 인터폰으로만 물어보시고 나오지 않으신다


잠깐 서류에 서명만 받는 상황인데도, 이렇게 다채로운 성격들이 보인다.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수고하십니다"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건네주시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정말로 힘이 난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도 겸손해지는 것 같다.

특히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 "서명칸이 잘 안 보인다"며 떨리는 손으로 정성스럽게 이름을 써 내려가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일상 속 풍경들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서명하시는 분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이름을 적으시는 분


반찬 만드시다가 맛있는 냄새와 함께 물기를 바삐 닦고 나오시는 분


나는 그저 종이 서류만 들고 다니는데, 매일 무거운 물건을 배달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건을 받을 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진짜 인생 경험이다.


현관문 하나하나가 각각 다른 인생을 담고 있다. 오늘도 초인종을 누르며, 사람살이의 진짜 모습들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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