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시간이 있어서
평소처럼 SNS를 스크롤하다가 눈에 들어온 글귀.
"작가와의 만남 - 고정순 작가 북토크"
고정순? 누구지? 솔직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월요일 오전, 특별한 약속도 없던 터라 그냥 신청했다. 뭔가 새로운 걸 접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약속 장소인 작은 북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평소에 한산했던 그 공간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자리를 찾아 앉으며 주변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유명한 사람이야."
"응, 엄청 유명해. 이번에 새 책도 나왔다며?"
"다크 그림책 작가로 정말 유명하지."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역시 난 안 읽어본 책이 너무 많구나.'
고정순 작가님이 등장했다. 생각보다 젊고, 눈빛이 인상적인 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도 어둠이 있어요. 그걸 외면하는 현실은 반쪽이라고 생각해요."
《옥춘당》'귀신 사탕으로 어느 순간부터 제사상에서 사라져 하리보 젤리로 대체된 그 사탕!'
《난독의 계절》'작가님이 난독증이 있었다고 근데 지금 작가라고'
《그림책이라는 산》, 《가드를 올리고》... 하나씩 소개되는 작품들. 나는 단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닿았다.
가정폭력, 소외된 사람들, 경계인들의 이야기. 밝고 예쁜 그림책만 생각했던 내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사인회 시간. 사람들이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나는 구매한 책이 없어서 그냥 뒤에서 구경만 했는데, 그 광경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책을 든 사람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 작가님과 나누는 짧은 대화,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
'나도 이런 날이 올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쓴 글로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일기는 숙제로만 방학 때 꾸준히 썼고, 학교 다닐 때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고정순 작가님을 보니 다시 그 마음이 꿈틀거렸다.
집에 와서 바로 브런치를 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켜지 못했던 자판을 열었다.
첫 줄에 이렇게 썼다.
"모르는 작가의 강연에 갔다가 꿈을 발견한 이야기"
아직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작은 해보려고 한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서,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언젠가 나도 독자들 앞에 서서 사인을 해주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날이 온다면, 오늘의 이 설렘을 꼭 기억해야겠다.
우연히 시작된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