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 1억 5천을 모으고도 아반떼를 꿈꾸는 이유

지옥철에서 올려다본 세상, 그리고 나의 속도

by 송진호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매일 아침 복작거리는 지옥철 한가운데 몸을 구겨 넣는 일로 시작된다. 콩나물시루 같은 객차 안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다 역 밖으로 밀려 나오면, 그제야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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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으로 올라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도로를 꽉 채운 수많은 출근길의 차들이다. 차창 너머의 운전자들은 적어도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린 나보다는 형편이 나을 거라 막연히 짐작해 본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을 그들과, 땀에 젖은 셔츠를 추스르는 나.


직장 생활 벌써 6년 차.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버텼지만, 나는 아직 차 살 돈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 샀다'는 게 맞겠지만,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볼 때면 그 구분이 무색해진다.


6년 동안 악착같이 일해서 모은 돈은 1억 5천만 원. 누군가는 적다고 할지 모르지만, 부모님 집에서 다니는 '캥거루족'이 아니라 서울 하늘 아래서 자취하며 월세와 생활비를 오롯이 감당해온 나에게는 피와 땀이 섞인 돈이다. 차를 사지 않은 이유도 단순했다. 더 빨리, 더 많이 모으고 싶었으니까. 이동의 편안함을 포기한 대가로 미래의 안정을 사려 했다.


그런데 요즘, 그 착실한 계획이 삐걱거리고 있다. 욕심을 내어 시작한 투자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서다. '규칙을 정하고 욕심을 덜어냈어야 했는데.' 파란불이 켜진 계좌를 볼 때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차라리 그 돈으로 차를 샀더라면, 적어도 출근길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까. 답답한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차가 없다는 사실은 소개팅 자리에서 더욱 뼈아픈 콤플렉스가 된다. "오실 때 편하게 오셨어요?"라는 상투적인 질문에도 괜히 위축된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남자에게 차가 없다는 건, 마치 갖춰야 할 스펙 하나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원래 목표는 순자산 2억을 모으고 차를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꼬여버린 투자와 더딘 저축 속도 앞에서 '올해 안에 2억'이라는 목표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서른둘. 그리고 곧 다가올 서른다섯. 그때쯤엔 나도 그럴싸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어릴 적에는 뚜껑이 열리는 외제차를 타는 멋진 커리어맨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의 풍파를 겪어보니 꿈의 크기도 조금은 겸손해진다. 지금은 그저 내 명의로 된 아반떼 한 대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화려한 하차감보다는, 비 오는 날 젖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공간이 간절하다.


지옥철에 몸을 싣고 흔들리며 생각한다. 어서 이 지긋지긋하고 불안한 과도기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언젠가는 나도 지상이 아닌 도로 위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카드를 찍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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