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은커녕, 이 좁은 방은 언제쯤 벗어날까

얼어버린 수도계량기를 드라이기로 녹이며

by 송진호

내가 사는 곳은 복도형 아파트다. 그 시절 아파트의 전형적인 형태. 매년 겨울 혹한이 오면 어김없이 수도가 언다. 그래서 나는 잠들기 전 늘 물을 조금 틀어놓는다. 그게 이 집에서 겨울을 나는 나만의 방식이다. 난방은 개별난방이 아니라 중앙난방이다. 우리 집에 찾아왔던 연인들은 하나같이 춥다고 했다. 그 말이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세월을 정면으로 맞은 집은 여기저기서 티를 낸다. 구석 벽지는 조금씩 들떠 있고, 방문에는 떨어져 나간 페인트 위로 덧칠된 흔적이 남아 있다. 아무리 고쳐 써보려 해도 이 집은 숨길 수 없는 노후함 위에 두꺼운 화장을 얹은 듯한 위태로운 느낌이 든다.


이곳에 스며들듯 들어오게 된 건 2022년 11월이었다. 그해 겨울, 뉴스만 틀면 전세사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집을 보러 다니기보다 뉴스를 더 자주 봤다. 그리고 결국 이 아파트를 택했다. 준공 36년 차, 광명에 있는 아파트. 회사는 마곡에 있고, 나는 광명에서 회사 셔틀을 탄다. 한 시간쯤 걸리는 버스 안에서 눈을 붙이면 어느덧 도착해 있다. 나는 그 시간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정의하며 지난 시간을 견뎌왔다.


수도관이 얼어 아침에 물이 나오지 않는 일은 올해도 반복됐다. 지난 경험으로도 나는 이걸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혹한을 뚫고 나가 야외 수도계량기에 헤어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손은 얼어붙고, 머리카락에서는 김이 났다. 그 순간, 내가 이곳을 처음엔 ‘임시거처’로 불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그 단어를 너무 오랜만에 꺼내 본 기분이었다.


내 머리를 말릴 때보다 더 정성껏 계량기를 달래주면, 갑자기 수도꼭지에서 막혔던 물이 터지듯 쏟아진다. 딱딱하게 굳은 드라이기 전선을 주섬주섬 말아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밖보다 집은 그래도 따뜻하다. 그 안도감에 곧바로 따뜻한 물을 틀어 몸을 씻는다.

Gemini_Generated_Image_utkazsutkazsutka.png

씻고 나와 집을 정리하다 바닥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지난주에 받은 청첩장이다. 며칠 전에는 그 친구의 집들이에도 다녀왔다. 2010년대에 지어진 계단식 아파트. 자가라고 했던가. 위치는 동탄이었다. 나는 그의 집 화장실을 보고 잠시 말이 없어졌었다. 바닥에 떨어진 청첩장을 주워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한동안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늦은 밤, 밝은 조명을 끄고 은은한 스탠드만 남겨둔다. 유튜브 뮤직에서 흐르는 재즈가 방을 채운다.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부동산 앱을 연다. '마곡'이라는 검색 기록이 여전히 상단에 있다. 매물 가격을 확인하다 아무것도 누르지 않은 채 화면을 끈다. 내일 아침 6시 알람을 맞춘다. 고요한 밤이 되니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더 선명하다. 얼지 않기 위해 흘려보내는, 어쩌면 내가 내고 있는 전세금 이자보다 더 값비싼 생존의 소리다.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당연히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