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신이 아니었다

갑옷을 벗은 고목, 그리고 갈대

by 트루먼 초이

영원한 재판은,

오로지 신만이 할 수 있다.

바람은 신이 아니다.

고목도 신이 아니다.



바람은 예측불허했다. 예고 없이 나를 찾아왔다.

어루만져줄 때도 있었지만, 어느 날은 나를 심판했다.


고목은 두려워했다. 넓은 평원에서 어디로,

어느 강도로 올지 모르는 바람을 대비하려 했다.

자신의 모든 부분을 단단하게 하려 했다.

심판의 날에는 무서웠다. 세상 모든 존재가 바람 같았다. 나 혼자만 피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잠시 걷히자, 세상에는 바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목은 그걸 몰랐다. 세상에는 해도 있고, 흙도 있고, 무당벌레도 있었다.


무당벌레는 말했다.

“나도 잠시 바람을 피해 있었어.”

그리고 덧붙였다.

“너의 문제는, 설령 잘못했을지라도, 매번 견뎌야 할 만큼 심각한 게 아니야. 일단 살아야지.”


그제야 고목은 깨달았다. 버티느라 못 느꼈던 상처의 통증이 뒤늦게 찾아왔다. 그동안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아픔들이 있었다.


이제야 그는 자신의 아픔을 인정했다.


옆에 있던 갈대가 그제야 보였다. 갈대는 약해 보였다. 바람에도 매번 흔들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뿌리는 깊었다. 그 뿌리가 어느새 고목에게도 닿아 있었다.


언제 저렇게 뿌리를 키웠을까. 그 뿌리가 갈대를 버티게 해주고 있었다. 겉모습은 그저 외형일 뿐이었다. 갈대는 바람을 견딘 걸까?


아니, 어쩌면 바람은 바람대로 두고 자신의 삶을 살았던 건 아닐까. 바람과 관계없이.


갈대도 때로는 잘못을 했겠지. 하지만 그는 알았겠지. 잘못이라고 해서 자신을 과하게 벌하는 순간 뿌리가 끊어진다는 것을. 그건 곧 자신이 무너진다는 뜻이라는 것을.


수단에 몰입하면 목적이 사라진다. 죄를 심판하는 것도 결국 삶을 위한 과정인데, 우리는 그 목적을 잊고 있었다. 원고–피고라는 역할놀이에 취해, 정작 그 놀이를 가능하게 했던 ‘삶’이라는 가치를 잊고 있었다.


살아 있었으니 원고도, 피고도 될 수 있었다. 역할놀이는 때로는 그만해도 된다. 재판은 끝난다. 재판도 끝이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영원한 재판은 신만이 한다.


고목은 다시 바람을 마주한다. 바람은 묻겠지.


“너의 죄를 알고 있는지, 너 때문에 고통받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고목은 갑옷을 벗어던진다. 갑옷에 남은 상처를 바람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말한다.


“재판은 신이 한다.”

“신 앞에 서기에 나는 이제 떳떳하다.”


과거의 나는 신 앞에 서는 게 부끄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잘못은 저질렀으나 누구보다 고민했다. 누구보다 반성했다. 그렇기에 나의 이야기를 고백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도 이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영원한 재판이라는 형벌을 거두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믿기로 한다. 바람은 바람대로 두기로 한다. 또 무언가가 자신을 흔들겠지. 심판의 폭풍이 아니라, 유혹의 산들바람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


그래도 고목은 말한다.

그저 유연하게 바람을 흘려보내겠다고.


영원한 재판은 오로지 신만이 할 수 있다.

바람은 신이 아니다.

고목도 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