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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26. 2022

해밀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스페셜 3화 

  2001년 3월, MBC에서 수목드라마로 <맛있는 청혼>을 방영했다. 지금은 다들 너무나도 유명해져 한 드라마에 모이기 힘든 손예진, 소지섭, 소유진, 정준, 권상우, 지성 등이 출연했다. 라이벌 중국집 아들과 딸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였는데 서극 감독의 홍콩영화 <금옥만당>과 셰익스피어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섞어놓은 듯한 솔직히 말해 스토리 면에서는 약간 식상한 드라마였다. 

  여주인공으로 나온 손예진과 소유진 때문에 사회에서도 그리고 당시 군복무 중인 나의 부대 장병들도 열렬히 그 드라마를 시청했다. 손예진은 청순가련한 스타일이었다면 소유진은 약간 털털하면서도 보이시한 매력을 발산해 부대 장병들은 서로 좋아하는 여배우의 편을 들며 드라마 시청 후에는 서로 싸우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선․후임병을 막론하고 토요일 오후 재방송 시간에는 다들 TV앞에 붙어 앉아 모두 <맛있는 청혼>을 시청했다. 본방송은 10시면 무조건 취침해야 하는 군대 사정상 10시 시청이 불가능했다.

  제대를 한 달 정도 남겨둔 중대 고참이 하나 있었다. 그도 <맛있는 청혼>을 보고 나서 손예진의 광팬이 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부르더니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했다.  


  “내가 제대하면 손예진 팬클럽 만들 건데 네가 좋은 팬클럽 이름 하나 생각해봐라.”

  “네?”

  “네가 부대 안에서 글 좀 쓰잖아. 그러니 작명 하나 하는 것쯤이야….”


  그의 말대로 난 부대 내에서 글 좀 쓰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래서 가끔 소대장님이 보고서 작성 등을 맡긴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무슨 팬클럽 이름을 대뜸 지으라는 것인가? 말년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청을 단박에 거절할 만큼 난 계급이 높지 않았다. 이제 고작 일병 3호봉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이름은 생각해놨어?”

  “저기, 그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고참의 닦달에 나는 결국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름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바로 ‘해밀’이었다. 내무반을 돌아다니던 어느 시집에선가 아님 수필집에서 본 것이었는데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고참에게 그렇게 설명하자 그는 입이 딱 벌어지며 좋아라했다.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 그녀의 미소가 딱 그거지. 좋아, 수고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 분은 제대를 했다. 그의 제대와 발맞춰 <맛있는 청혼>도 종영을 했다. 이와 동시에 내가 좀 성의 없게 지은 팬클럽 이름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다만 손예진은 이후에도 여러 드라마에 나오면서 자신의 주가를 계속 높이며 톱 탤런트로 자리매김했다.

  일 년 뒤 나도 제대를 했다. 그리고 바쁜 학창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손예진이 관련된 인터넷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녀가 팬클럽 행사에 참여했다는 소식이었다. 시큰둥하게 이를 보고 있었는데… 그러다 그녀의 팬클럽 이름을 확인하고는 그만 경악했다. 바로 해밀이었던 것이었다. 그 이름을 확인하자 내 기억은 다시 작대기 두 개를 가슴에 달고 까까머리에 어리버리한 군생활을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고참도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정말 팬클럽을 만든 거야’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팬클럽에 대해서 더 알아보았다. 그러나 회장은 여성이었다.


  ‘아니 그럼 그 고참은 아니라는 얘긴데 그럼 대체 팬클럽 이름이 어떻게 해밀이 된 거지?’


  아마 누군가도 그녀의 맑은 미소를 보곤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님 내가 보았던 시집 혹은 수필집을 보곤 거기서 ‘해밀’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냈을 수도….          




(에필로그)     


  앞서 얘기했듯이 부대 장병들은 <맛있는 청혼>을 본방 시청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들 토요일 오후 재방송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부대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토요일 오후에 장병들에게 휴식을 주었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가끔 생길 때도 있었다. 주로 소소한 작업들이었다. 그럼 계급이 낮은 장병들 순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TV시청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맛있는 청혼>을 방영하던 2001년 3월과 4월은 조금 달랐다. 눈물을 머금은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키시는 작업은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뭔데?”

  “지금 <맛있는 청혼>을 하고 있습니다. 그걸 다 본 후에 하겠습니다.”

  “뭐야?”


  당직사관이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여도 작업을 지시한 장병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매서운 눈빛에 당직사관이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그래… 그럼 다 본 다음에 작업해.”       

 

* <맛있는 청혼>이후 더 대단한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인 <호텔리어>가 방영되었었는데 정작 그 드라마는 부대 내에서 인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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