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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Mar 01. 2022

친구의 졸업식을 다녀와서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14화

페이퍼 작성 : 2005년 2월 18일                                   시간적 배경 : 2005년 2월 18   



  오늘 친구 재윤이가 졸업식을 했다. 한국항공대 시절 아웃사이더였던 난 공부도 못했고 학교 행사에도 잘 참여하지 않아 친구나 선배를 사귈 기회가 없어 아는 사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이제 막 사회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녀석은 진작 사회인이었다. 새해를 맞기도 전에 취직에 성공해서 한창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중이었다. 사실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뻔했는데 회사의 배려로 간신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녀석은 털어놓았다. 나도 앞으론 녀석의 회사(하이닉스)가 이천에 있는 통에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할 것 같아 동국대 선배들의 졸업식도 팽개치고 한국항공대로 향했다. 

  녀석만이 아니라 항공재료과 98학번 남학우들이 대부분이 오늘 졸업을 했다. 겨우 안면만 트고 지내던 옛 동기들이었지만 나는 반갑게 그들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다시 한 번 한국항공대가 시설이나 대외인지도는 떨어져도 취업률 하나는 알아주는 학교임을 느꼈다. 다들 전공에 맞춰 반도체나 전자관련 회사에 취직해 있었는데 중소기업이 아니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들이었다. 명함도 여러 장 받았다. 거기엔 버젓이 회사명과 소속부서와 함께 친구들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 원래는 항공대 항공재료공학과 98학번이지었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 여길 때려치우고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03학번이 되는 길을 택했다. 


  새터(새내기 배움터의 줄임말, 일종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답사 때문에 금방 헤어져야 했지만 설령 답사가 없었어도 난 그들과 오래 있지 못할 형편이었다. 다들 졸업식에 참석하고자 휴가를 낸 입장이었고 회사들이 다들 지방에 자리한 터라 늦게까지 축하술자리를 벌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어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국항공대 방문을 끝마쳤다. 

  새터 답사를 끝내곤 우연찮게 동국대 선배들의 졸업축하 술자리에 끼게 되었다. 거기서 모 선배를 만났다. 나랑은 동갑이었는데 한국항공대 동기들처럼 멋진 정장을 차려입었다. 그런데 그는 한국항공대 동기들과 달리 바쁜 일이 없는지 오후 3시부터 밤 12시가 넘었던 그때까지 계속 술을 들이켰다고 한다. 새터에도 오겠다고 야단이었다. 

  주머니에 있는 친구들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어두운 밤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만약 동국대로 오지 않았더라면 나도 아마 오늘 한국항공대 졸업식장에서 학사모를 쓰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미 어디에 취직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지금 이 시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난 과감히 샐러리맨보다는 작가가 되는 길을 택했다. 이년 뒤, 그 선배의 자리에 내가 대신 자리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내 작품이 인정받거나 작가로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인다면 내 마음이 이리 씁쓸하지는 않을 텐데 괜히 적성에 맞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구분 못하고 엉뚱한 짓을 일삼다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밀려들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에필로그)     


  이 페이퍼를 작성하고 이년 후에 나도 졸업이라는 걸 했다. 다행히 졸업하기 석달 전에 취직해서 내 졸업식을 빛내러 온 분들께 명함을 건넬 수 있었다. 나와 함께 졸업하던 선배들이 대부분 백수 소리가 듣기 싫어 하는 수 없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아님 그냥 노는 상황이었던 것에 비하면 난 다행인 케이스였다. 

  하지만 이년 전 한국항공대 동기들처럼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의 로고가 명함에 박혀 있진 않았다. 문창과 졸업생이 갈 만한 곳은 한정되어 있거나(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 아니라 프리랜서가 되는 경우가 많아 안정된 생활을 기대하는 건 힘들었다) 아예 없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난 고작 한 달 반을 근무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빈약한 월급과 어정쩡한 내 위치와 역할 때문이었다. 이후로 여러 회사에 다니긴 했는데 지금까지도 2005년 당시 한국항공대 동기들이 내밀었던 명함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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