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you everyone!!

파란 방갈로의 노래 14

by 블루

폴이 농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몇 달 동안, 그도 나에게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라 나 혼자 해석했었다. 그리고 나에게 베풀었던 그의 순수한 친절에 대해 그는 어쩌면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나의 아픔만 생각했고, 나의 무너진 자존심만 중요했었다. 이기적 이리만치 나에 대한 집중이었다. 그가 외롭게 스러져 가고 있던 그 아까운 시간에도...

12월의 어느 수요일, 그렇게 나는 폴에 대해 알게 되었고, 스테이시가 집에 데려다줘야 할 만큼 나는 넋이 나간 사람이 되어있었다. 밤새 휴대폰을 열어 놓고 그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무슨 자격으로 그에게 전화를 한단 말인가...

스테이시가 말했던 '더 늦기 전에'라고 했던 말이 자꾸만 걸렸다. 나도 이미 늦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사과를 했어야 할 기회도, 고마웠다고 말해야 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지나간 것을 놓친 아쉬움에는 '만약에'라는 후회가 붙었다. 만약에 내가 그때 그 꽃다발을 받았더라면, 만약에 그에게 웃어 주었더라면, 만약에 내가 산 위로 그를 따라 올라갔었더라면.. 만약에 내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었더라면.. 어쩌면 지금 그의 인생이 조금은 다르게 바뀌었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을 했다.

만약에....


다음날 목요일, 나는 결국 농장으로 일을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울거나, 신경을 쓰면 반드시 아프곤 했었다. 내 몸의 열은 40도 가까이 올랐고, 집주인 데비의 말에 따르면 알아듣지도 못할 헛소리도 했다고 한다. 병원으로 나를 데려 가려하자 나는 그들에게 '너무 늦었다' 며 가지 않겠다 고집을 부렸다 한다.

그렇게 잠들다, 깨었다를 반복하며 시간 감각도 잊었던 그날 저녁, 나는 나의 핸드폰이 울리던 소리에 신기하게 정신을 차렸다. 울리던 핸드폰엔 '폴'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는 그 전화를 덥석 받지 못한 채 바라만 보았다. 그런 내게 그 벨소리는 마치 '괜찮아요.. 받아요' 하던 폴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들렸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스몬이었다.

" 미안해요 민.. 폴이 지금 잠시 정신이 돌아왔는데.. 폴과 통화를 해도 되겠어요?"

스몬은 내게 미안하다 했다. 미안하다니...

" 물론이에요. 폴을 바꿔 주세요.."

스몬은 폴에게 전화를 옮겨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말이 없었다. 대신 그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 여보세요.."

내가 말했다.

" 헤이... 민... 거기.. 당신..이에요?"

몇 달 만에 듣던 그의 목소리였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숨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억지로 목소리를 밝게 내려하고 있음 또한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도 울지 않으려 애를 썼다.

" 좀 어떠세요?"

나는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 나는.. 괜.. 찮아요... 민.. 은 어때요?"

그는 나를 걱정했다.

" 나도 괜찮아요.. 힘들면 말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민.. 나를 보러.. 와.. 줄수.. 있어요..?"

" 갈게요.. 이번 토요일에 스테이시와 같이 가기로 했어요"

" 그랬군요.. 고마워요.. 꼭 와줘요.."

그는 그 말을 하고 목에 사래가 들린 것인지 기침을 했다.

" 말하지 마세요"

진정된 그가 말을 이었다.

" 괜찮아요... 민을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 져서.. 그랬어요.."

그는 다시 기침을 했다. 스몬이 통화를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이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러나 폴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내가... 가져왔어요..."

" 뭘요?"

" 그... 꽃다발요.. 내 거.. 맞죠?"

그는 내가 산속 낭떠러지 밑으로 던졌던 그 꽃다발을 보았고, 방갈로 뒤편으로 산을 타고 올라가서, 그 몸으로 그 꽃다발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것이 뭐라고, 그는 기어이 나를 울게 했다.

" 그러니까.. 꼭 와줘요.."

" 네 갈게요. 그러니까 폴도 힘내요. 여기로 돌아와야 하잖아요"

" 그래요.. 내가.. 끝까지.. 해 볼게요... 그러니.. 민도.. 약속.. 지켜요..."

" 네 토요일에 만나요.."

" 고마..워요...잘.자요..."

" 잘자요 폴"

폴은 힘들게 나와의 통화를 마쳤다. 나는 몇 번이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그리고 많이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왠지 그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것 같아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토요일에 병원으로 찾아가 그를 직접 보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으로 돌아오겠다던 그도, 찾아가서 웃어 주겠다던 나도, 우리는 누구 한 사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다음날 금요일 오후 잠이 든 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나는 토요일까지 기다렸으면 안되었다. 어째서 당연히 그가 토요일까지 나를 기다려 줄거라고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또 한번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멍청하게 굴었다. 사자처럼, 바위처럼, 햇살처럼 그리고 천일홍처럼 단단하게 아름답던 폴은 병마와 끝까지 맞서 싸웠지만, 토요일까지 기다려 줄 기운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마을의 작은 교회로 돌아왔다.

그의 관은 상체 쪽 뚜껑이 열려있었고, 오르간을 연주하던 여인은 귀에 익숙한 찬송가를 반복해서,늘어지게 연주하고 있었다. 아마도 폴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그는 그의 장례식 음악으로 분명 멋진 컨트리송을 선택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예배당 제일 뒤편에 앉았다. 그렇게 보고 싶던 그가 10여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나는 보지 않겠다 이미 마음을 먹은 뒤였다. 차갑게 누워 있는 그를 차마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회 예배의 형식에 맞춘듯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오르간이 멈추었고, 강단이 있던 앞쪽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왔다. 그리고 영상이 시작되었다. 휠체어에 앉아 노란색 털모자를 쓰고, 환자복을 입고 있는 폴이었다. 예상치 못했던그의 모습에 나는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많이 여워있었다. 그러나 그는 늘 그렇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여러분 안녕! 내가 이런 대사를 할 줄 몰랐는데, 여러분이 만일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난 아마도 이 옆에 누워 있겠지요?"

그러면서 그는 영상을 뚫고 자신의 관을 보려는듯한 재미있는 행동을 보여, 장내의 사람들을 웃게 하였다.

" 그리고, 로클란!! 어디 있나 로클란..?"

그러자 그의 죽마고우이며, 폴과 같은 폴로 팀의 선수인 로클란이 손을 들어 대답했다.

" 나 여기있어.."

로클란은 이미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의 부은 얼굴로 그가 얼마나 울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의 얼굴은 가여우리만치 엉망이 되어 있었으나, 그는 폴의 부름에 마치 살아 있는 친구에게 대답하듯 크게 대답하였다.

" 미안하지만 로클란, 내가 지금 턱시도 정장에 나비타이 같은 것을 매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봐주겠나? 내 누나는 분명 그걸 입히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나는 폴로 경기복을 입고 싶다고 했거든.. 내가 뭘 입고 있나?"

그러자 로클란은 울먹였지만 다시 큰 소리로 대답했다.

" 걱정 마 친구!! 너는 제일 멋있는 경기복을 입고 있다네... 천국에 가서도 인기 좀 있을 거야!!"

" 다행이군!"

그들은 마치 정말 대화를 주고받는 듯했다. 폴은 자신이 알던 사람들과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고, 이름이 불린 사람들은 그의 부름에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폴은 그들에게 짧게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간간이 사람들에게서는 폭소가 터지기도 하였다. 폴 다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 민! 왔어요? 아마 왔더라도 지금쯤 제일 뒷자리에 앉아있겠지요?"

그러면서 그는 나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손을 들어 대답했다.

" 여기요"

그는 카메라를 잠시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 민, 울지 말라고 안 할게요.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어요. 뭐든지 민이 원하는 대로 해요.잊지마요. 고삐를 꽉 쥐고 살아요... 그런데 당신이 울면 얼마나 못 생겨지는지 당신 알고 있나요? 그리고 이 다음에 누가 꽃다발을 건네거든 받아줘요.. 안 받아 주면, 그거 정말 기분 별로거든요. 하지만 나보다는 더 멋진 남자여야 해요. 알겠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See you everyone"


그의 영상이 끝났고, 사람들은 줄을 지어 한 사람씩 앞으로 가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나는 갈수가 없었다. 스몬이 다가와 내 옆에 앉으며 내 손을 잡았다.

" 괜찮아요. 보고 싶지 안으면, 안해도 되요"

스몬의 고개짓으로 폴의 관 옆에 서서, 기다리던 폴의 친구들이 관의 뚜껑을 닫았다. 나는 미칠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폴이 왜 저기에 누워 있다는건지..아...아직 할말이 많은데.. 그에게 해줘야 할 말이 많은데...이게 뭐지..?


나는 일어나서 관쪽으로 다가갔다. 어쩌면 폴이 아닐수도 있겠다 생각했던것 같다. 로클란이 재빠르게 관 뚜껑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거기엔 폴이 누워있었다. 많이 야위었지만 분명 폴이었다. 그는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때 입었던 유니폼을 입고, 두 손을 모으고 말 채찍을 잡고 있었다. 로클란의 말처럼 천국에서 인기가 있을만큼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의 얼굴엔 살짝 미소가 보였고 평온해 보였다. 그가 처음 나에게 샌드위치를 건냈던 그때처럼....


나는 그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의 볼에 입맟춤을 해 주었다.

그리고 너무 늦은 그 말을 할수있었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많이 미안해요..

See you..Paul"


그의 유언대로 그는 화장을했다.

그리고 그가 나고 자란, 방갈로들이 있는 그 숲속의 어느 나무 밑에 잠들었다.


이젠 그의 말처럼 그는 항상 그곳에 있는것이다.

" 나 여기 있을게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