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방갈로의 노래 13
그렇게 방갈로를 찾은 후 몇 달 동안 나는 말라가고 있었다. 뭐라 설명할수 없는 슬픔으로, 허무함으로 나는 전에 없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폴이 환상이었다 생각하려 노력했고, 언젠가 보았던 영화 속의 한 사람을 내가 착각하는 것이라 최면을 걸곤 하였다.
"슬픈 영화 한 편을 본 것뿐이야 "
나는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서, 썬더와 이브가 있는 마구간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 무렵 나에겐 새로운 조수가 생겼다. 이름은 엠마였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의 어린아이였다. 엠마는 그 나이의 여자아이답게 웃음도 많고, 처음 배우는 일에는 겁을 내기는 했어도 매우 진지한 자세로 배우려 했다. 당시 운전을 못했던 엠마는 그녀 부모의 도움으로 출퇴근을 했었고, 그녀의 부모는 엠마의 상관인 매니저가 동양인이란 이야기를 듣고 나를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당시 동양인이 매우 낯선 동네이기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동양인이라고 하니 배우지 못하고, 또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 자신들의 어린 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내 사무실에 앉아 차를 얻어 마셨고, 엠마의 근무 환경이 보고 싶다는 핑계를 댔지만 나는 그들이 보고 싶어 하던 환경은 바로 '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때의 나는 얼마 전 폴과의 일로 무척이나 예민해져 있을 때였다. 주변에 있던 백인들 모두에게 염증이 나 있었고, 영어를 쓰는 모든 이들이 이유 없이 싫었었다. 그러니 내 사무실에 앉아 나를 훔쳐보며, 자꾸만 내게 말을 걸던 엠마의 부모에게 나는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 수가 없었다. 나를 인터뷰하듯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던 엠마의 아버지는 끝내는 내게 학교공부는 어디까지 했느냐 물었고 나는 무례했던 그의 질문에
" 당신이 상관 할바 아닙니다"
라고 더 무례하게 대답을 해버렸다. 그래서 결국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보던 엠마를 기어이 울려 버렸었다. 나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래도 다행히 엠마는 계속해서 일을 나왔고, 그런 엠마에게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최대한 잘해주려 애를 썼다.
그리고 성격이 살갑고 귀여웠던 그녀는 농장 누구와도 친했었고,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듣고 와서는 전해주곤 하였다. 때로는 농장밖의 이야기를 전할 때도 있었지만, 어쩌다 내가 알아야만 하는 농장 이야기도 전해 주었으므로 나는 그녀가 혼자 얘기하도록 내버려 두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대뜸
" 민! 폴이라고 아세요?"
하며 내게 물었다. 폴이란 이름이 엠마에게서 갑자기 튀어나오자 나는 엠마를 바라보았다. 엠마는 내가 관심을 보이자 더욱 신나 했다
" 민도 그 남자를 아는군요? 글쎄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남자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암이래요. 그것도 말기.. 곧 죽을 것 같다고 하는데 그를 잘 아세요?"
역시 깡촌에 있는 사람들은 말을 잘 만들어 낸다고 나는 생각했다. 참으로 심심한 인간들이 아닐 수 없다. 나에 대한 추문을 만들어 내고 즐거워하듯, 이 번엔 폴이 죽어 간다는 헛소문을 만들어 내고 시간을 때우고 있는가 보다. 그래도 만들어 낼 이야기가 없어서 사람이 죽어 간다는 헛말은 좀 지나친 것이라 생각했다.
" 엠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거지? 다시는 그런 헛소문을 입에 담지도 마! 알겠어?"
내가 전에 없이 화를 내자 엠마는 놀란 토끼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 미안해요. 민.. 그게 헛소문이었나요? 나는 그저 식당에서 트레이시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온 것뿐인걸요"
엠마는 분명 트레이시라고 했다.
" 트레이시가?"
그러자 엠마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당장 식당으로 달려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트레이시가 헛소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화가 났다. 그것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스몬의 동생을 두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식당엔 엠마의 말대로 몇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하던 말을 멈추었다.
" 스테이시! 당신이 정말로 그랬어요? 폴이 죽어 가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나는 주위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격분하고 있었다.
"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스테이시는 말이 없었다. 그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 나의 말만 듣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스테이시를 보자 더욱 화가 났다. 그녀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다. 아니, 실수였다고 해줬으면 했다.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해줬어야 했다. 그러나 스테이시는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나는 그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스테이시에게 사정조로 얘기를 했다.
" 아니죠? 거짓말이죠? 스테이시.. 아니라고 해주세요"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곁에 서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무도 내게 아니라고 말을 해주지 않았다.
무겁게 스테이시가 말문을 열었다.
" 그렇잖아도 민에게 이번 주말쯤에 폴에게 한번 찾아가 보자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알게 되었네.."
내가 기대한 답이 아니었다.
" 폴이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잠시 사이를 두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 병원에...스몬의 말로는 이젠 포기 상태인 거 같아. 희망이 없다 하네. 늦기 전에 한 번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스테이시는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폴이었다.. 그렇게 건강하고 빛나는 햇살 같은 사람이 암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 췌장암이야. 항암을 시도했는데 이젠 포기해야 하는 모양이야. 너무 늦게 발견한 게 문제였던 것 같아. 알았을 땐 이미 말기였다 하니까"
내 머리는 스테이시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말 표현 그대로 누군가 묵직한 것으로 내 뒤통수를 후려 친 것만 같았고, 내 귓속은 알수없던 소음만이 어지럽게 지지직 거리고 있었다.
" 갈 거지?"
스테이시가 묻는다.
" 아뇨.. 폴이 집으로 돌아오면 만나면 돼요.. 곧 올 거예요"
나는 혼자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 그리고 폴의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야? 혹시 차단했어?"
나는 그제야 내가 폴의 전화를 차단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방갈로를 다녀온 후 나는 바로 그의 전화를 차단해 놓았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연락처에서 그의 이름을 찾았다. 빨갛고 동그란 기호가 그를 아프게 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이름 옆에 붙어 있었다.
그제야 그가 왜 나를 피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높은 산에 올라, 화가 나서 그의 앞을 지나가던 나를 보며 무엇을 했을지 알 것 같았다.
그 착한 사람이 그렇게 했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나는 따라가서 물었어야 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이 있는거냐고...
그날, 그를 따라 올라가서 두려움에 울고 있었을 그를 안아 주었어야 했다. 같이 있어주었어야 했다.
아마 폴이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절대 나를 혼자서 그렇게, 울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차단에서 그의 이름을 풀으려 했지만,
떨리던 내 손은 그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쓸모없는 눈물이 두 눈에 꽉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흐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눈물이 이렇게도 흐를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눈을 감았다.
스테이시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 불쌍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