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다가 좋아하다가 그 끝에 다다르게 되면 영화를 결국 찍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내가 영화를 찍어본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것도 공포영화였다. 그 과정은 굉장히 우당탕뚝딱이었다. 일단 조과제로 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이것은 망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사실 영화란 모두 조과제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다수가 조장의 말을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훌륭한 영화가 나오는 거니까. 그렇기 때문에 조모임의 장점과 단점이 영화 제작에 모두 들어있다. 장점.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나도 훌륭한 것을 하고 싶어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게 된다. 단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도 못 가는 법이다. 우리의 영화는 산으로도 못 가고 당연히 물로도 못 가고 어쨌거나 배는 만들었는데 이걸 어디로 끌고가지 끙끙 하면서 6명이서 다들 소리높여 우기다가 나주평야를 헤메고 돌아온 꼴이었다. 시놉시스를 짜는 것 부터가 난관이었다. 국어국문학과가 훌륭한 모티프 소재를 내면 경영학과가 그것은 교수님이 강조한 서스펜스라는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어깃장을 놓고 공대와 수학과 학생은 나는 아는 게 없으니 끼지도 않겠다며 무임승차를 하는 와중에 내가 최종 수정을 마친 최종안을 내서 씬과 숏으로 나눠야 하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시놉은 '생각나는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제목을 달고 모두에게 나누어졌고 우리는 대충 말도 안되는 (차라리 진짜 말도 안 됐으면 웃기기라도 했을텐데 이건 말이 안 되면서도 묘하게 설명충처럼 이해해보려고 뉴런에 힘을 줘서 노력하면 이해는 되는 그런 똥이었던 것이다.) 자투리 대본을 가지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 다음 난관은 분장과 소품이었다. 시놉에 보면 배경은 병원인지 학교인지 모를 폐건물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병원으로 하자는 의견과 학교로 하자는 의견 충돌을 조장이 적당히 황희정승처럼 조화시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학교 분위기도 내야 하고 병원 분위기도 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의 후진 문대 건물에서 곳곳에 찢은 오래된 붕대를 뿌려놓고 그 위에 적당히 빨간 물감도 뿌리고 찢은 논문 쪼가리도 뿌려놓으면서 촬영을 시작했다. 논문 쪼가리는 그러려니 하는데 오래된 붕대는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하다면 내가 눈물을 흘릴 시간이다. 왜냐하면 시놉팀은 소품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신경을 1도 안 쓰고 일단 배경을 병원으로 정했기 때문에, 촬영팀이 병원 배경을 어떻게 구하냐며 언성을 높였고, 내가 우리 어머니가 22년 전에 군의관이셔서 집에 붕대가 좀 있으니 진정하라며 둘을 화해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나는 황희 조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포 분위기를 좀 조성하기 위해서 키포인트가 되는 소품 뭐 하나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나는 집에 굴러다니던 너무나 실사체로 생긴 아기 인형을 하나 품에 안고 촬영장에 들어섰는데, 그 순간 조원들이 모두 다섯 발자국씩 내게서 멀어졌다. 그렇다. 그것은 너무나 공포스럽게 생긴 애나벨풍 인형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 애나벨풍 인형은 단독샷을 5초나 가지게 되었다.)
그 다음은 연기가 난관이었는데, 다행히 그 국어국문학과 친구가 연극동아리에서 배우를 해본 적이 있다고 해서 쉽게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주인공이 두명인 시놉이었다는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연기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국어국문학과 친구와 줄창 시놉으로 옥신각신해댄 경영학과 친구가 다른 주인공을 맡게 되었는데, 촬영에 들어가서 첫 마디를 내뱉는 순간. 한 명은 배우 발성을 하고 한 명은 옆에서 다 씹히는 발음으로 대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불만을 품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앞서 너무 많은 난관을 헤치고 여기까지 와서 지미집도 없이 공중샷을 찍으며 개똥깔라파워쓰레기 같은 뭔가를 만들고 있었고 카메라는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용도, 주제도, 연출도, 소품도, 연기도, 브금에 넣을 비명소리를 녹음하다가 경비아저씨가 달려오셔서 결국은 브금마저도 X망한 영화 한 편이 내게는 아스라히 남아있다.
고맙게도 그 영화를 조과제 발표시간에 발표했을때 모두가 침묵했으나 그 와중에 정말 무서웠다며 덜덜 떨어준 남학생이 한 명 있으니, 약간의 보람이 느껴졌다. 다들 그렇기 때문에 이 미친 과정을 수행하는 걸까? 하긴, 나도 돈을 받았다면 어떻게라도 끝낼 것 같긴 하다. 그 영화가 '리얼(2016)'이라도 찍어야지 뭐 어쩌겠나. 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다 그렇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악전고투 끝에 똥같은 영화라도 한 편 완성해낸 사람이 보기에 이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정말 보면서 깔깔 웃지만 사실은 울고 싶다. 미디어 공부를 하면서 역시나 영화를 찍는 사람인 내 친구도 이걸 웃으면서 울면서 봤다고 한다. 윗분이신 기획자는 이러저러한 것을 만들어 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사람이 돈줄이기 때문에 찍소리도 못하고 따라야 한다. (마치 내가 교수님이 이러저러한 것을 만들어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사람이 학점을 주기 때문에 찍소리도 못하고 그 X망한 조모임을 끝까지 이끌었던 것처럼.) 그런데 이 영화는 아무리 그래도 기획자의 설정이 3D 수준으로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어떤 3D냐면, Difficult, Difficult & Difficult의 3D다. 장편영화보다 단편영화 잘 찍기가 더 어려운 마당에 무슨 단편 영화를, 그것도 원테이크로, 그것도 생방송으로 찍느냐는 말이다. 우리도 확신의 애나벨 아기인형을 찍을 때 세 번은 돌려 찍었다. 왜냐하면 이 아기 샷을 넣고는 싶은데 어디서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촬영 당시에는 후편집에서 무슨 장면을 쓸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화에는 변수가 많다. 시놉이 정해져도 그렇다. 예를 들면 배우의 갑작스러운 사고, 지붕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난 지미집, 갑자기 쏟아져 뽀송이(음성 녹음하는 마이크를 귀엽게 이렇게 부른다.)를 축 젖게 만드는 우천이라던가. 생방송일 경우에는 더하다. 잘못된 장면에 갑자기 떨어진 소품 한 짝이라거나, 배우가 슬프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무대 배경이 무너진다거나, 죽어서 미동이 없어야 하는데 산 사람이 친 NG때문에 웃음을 참느라고 들썩이는 시체 등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있어서는 어쨌거나 완성한 사람이 프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그 영화가 '리얼'이더라도 어쨌거나 완성했으니 완성하지 못한 '대부'보다는 나은 것이다. 너무 급진적인 발언인가? 하지만 영화를 한 번이라도 찍어봤다면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땀눈물이 들어가 있는 것인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에서는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그리고 또 뒤에서 생고생을 하며 어쨌거나 방송을 이어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들은 훌륭하게 완성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프로다. 프로가 뭐 별 거 있나. 돈 받고 완성하면 프로지. 그걸 비평하고 리뷰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프로가 아니라고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게 아닌 이상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프로의 눈물겨운 삶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일본 영화답게 가족신파도 좀 들어가 있다. 딸의 꿈을 이루어 준 아버지는 모든 영화광들의 꿈을 이루어준 감독으로 이어지며 줌인, 페이드아웃 된다. 그것이 비단 일본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20년 전 홍콩에도 비슷한 영화가 한 편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여기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영화를 앞서 두 개나 말아먹고 점점 망테크를 타고 있는 젊은 감독이 하나 있다. 공들여서 쓴 대본은 제작사 사장에게 들고 갔더니 에로도 좀 넣고 총질도 좀 넣어서 헐리우드 영화 '세븐'을 흉내내어 '더블세븐'이라고 하고 찍자는 말이나 듣는다. 화가 나서 씩씩대며 걸어갔더니 조감독이 이렇게 말한다. 너 어머니 돈은 드려야 될 것 아니냐. 그 말에 넘어가서 찍기 시작한 영화. 하지만 포르노다. 돈을 벌려고 했더니 흥하는 건 벗기는 것 뿐이더라. 게다가 여배우는 제작사 사장 딸로 연기가 발연기다. 포르노를 찍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데, 시놉을 써서 여자친구에게 보여줬더니 돌아오는 것은 비평에 비평에 날카로운 비평뿐이고, 중요한 인물이 될 여배우는 '아항 아' 하는 이상한 신음이나 내며 누가 봐도 가짜인 오르가즘을 연기하고 있다. 에이 나 때려쳐! 하고 기세 좋게 나가보지만, 딸린 식구들이 너무 많다. 자기가 영화를 계속 찍어야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스탭들이 수십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자기는 장사보다 예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포르노에서 훌륭한 연출을 찾아내는 촬영감독의 열정을 보니 자기가 에로영화라는 것을 너무 과소평가 했나 싶기도 하다. 결국 다시 돌아온 촬영장. 장국영은 마지막에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꽤 잘 찍었죠?
이 영화에는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잘 만든 영화란 뭘까.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을 울고 또 웃게 만드는 걸까. 이 영화는 이동승 감독과 나지량 감독이 찍었는데, 이동승 감독은 영화에 자기를 직접 넣기까지 했다. 장국영이 조감독과 함께 영화관에 가 보니 이동승 감독의 예술 영화는 쫄딱 망해있고, 이름도 모를 누군가의 작품은 공중에서 풍차돌리기를 하면서 섹스를 하는데 사람들이 깔깔대고 웃으면서 본다. 장국영은 나오는 길에 이동승 감독을 마주친다. 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침울해하고 있었다. 그런 이동승 감독에게 기자들이 몰려와 묻는다. 이번 영화 망했는데 어떠신가요! 관객이 쓰레기라는데요! 한 마디만 해주세요! 이동승은 한 마디를 하고서 사라진다. "관객들은 작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살한다. 그 후로 그 예술영화는 대박이 난다. 진정한 예술이라나 뭐라나. 예술이란 뭘까. 영화란 뭘까?
여주인공인 몽교 역할로 나오는 서기는 자기는 진정한 예술을 하고 싶다는 장국영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삼류 영화, 삼류 영화 하지만, 그 삼류 영화를 찍는 배우의 입장은 생각해봤어요?" 그러게. 우린 저질 영화를 보고 저질이라고 말하지만 그걸 또 찍어야 하는 사람들은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그 사람들도 마치 내가 똥같은 영화를 만들어내었을 때 악전고투 한 것처럼 악전고투 하며 찍어냈을 것이다. 게다가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볼 때 영화 자체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찍는 데 동원되었을 모든 인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감독만의 것이 아니다. 만든 모두의 것이다. 그 안에는 배우들도 있고, 조명스태프, 촬영스태프, 음향, 분장, 소품, 편집, 기타 등등 모두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 한 편은 모두 누군가의 피땀눈물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누군가의 자식이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