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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산드라 Dec 30. 2021

뜨거운 것이 좋아

* 스포일러 있습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1959)

영화사의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단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나는 주저없이 '뜨거운 것이 좋아'를 고를 것이다. 제목은 무슨 3류 에로영화같은데 영화를 시작하는 순간 이 영화는 A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은 미국의 금주법시대. 커피라고 뻥을 치고 술을 팔던 곳에서 악단으로 연주를 하며 먹고 살던 주인공 둘(위의 사진에서 마릴린 먼로의 양 옆에 있는 두 남자)은 경찰의 단속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고, 어쩌다보니 갱스터들의 살인현장까지 목격!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이 두 주인공을 죽이려는 갱스터의 마수를 피하여 주인공들이 택한 것은 바로 여장을 하고 여성 악단에 들어가 플로리다행 기차를 타는 것인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이 영화는 재미있는 한 편의 코미디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잊으면 안 될 점. 이 두 주인공은 그 기차 안에서 마릴린 먼로를 만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로맨틱코미디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장남자 소재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흑백으로 촬영된 것도 당시 어색했던 분장기술의 흠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장남자가 동성애 기류 가득한 여성 호모 소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 영화는 여기서 웃음을 자아낸다. 서로 바라보면 총질이나 해대는 남성 호모 소셜의 세계와 달리 여성 호모 소셜의 세계는 이제 갓 여자가 된 남자 둘에게 험난하기 그지 없다. 속옷같은 잠옷만 걸치고 춥다며 한이불 속으로 파고들지를 않나, 금주법 시대에 어디서 술은 구해왔는지 순식간에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 떠들며 왁자지껄 파티를 벌이지를 않나... 주인공들은 헛짓거리를 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위해서 계속해서 되뇌인다. "나는 여자다, 나는 여자다, 나는 여자다!" 그러다보니 정말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일까? 플로리다에서 만난 백만장자와 어쩌다보니 데이트를 한 주인공 중 한 명은 침대에 드러누워 백만장자와 결혼을 하는 백일몽을 꾼다. 그런 친구에게 다른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라며 외친다. "넌 남잔데 남자랑 결혼을 어떻게 한단 말이야? 네가 여자 옷을 입고 있다고 진짜 여자가 된 줄 알아? 자 따라해, 나는 남자다, 나는 남자다, 나는 남자다!"


뜨거운 것이 좋아(1959)

영화를 보다 보면 시종일관 유쾌한 가운데, 이토록 남자와 여자 간의 구별이란 얄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여성 수행을 하면 여자가 된 것 같고, 남자 옷을 입으면 또 남성 수행을 하다가, 다시 여자 옷으로 갈아입고 여성 수행을 하면 다시 여자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똑같은데, 세상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달라질 뿐이다. 죠는 남자 옷을 입은 상태로 슈가(마릴린 먼로)를 꼬시다가, 마지막에 고백할 때는 여자 옷을 입고 여자인 채로 모두의 앞에서 슈가에게 키스를 한다. (뒷목을 잡고 넘어가는 고지식한 여성악단 사감은 덤이다.) 반면 백만장자의 요트를 타고 달아나던 데프니는 끈질기게 이어지는 구애에 결국 가발을 벗어던지고 "난 남자예요!"라고 폭로하고 만다. 그에 대한 백만장자의 대답이 명언이다. "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죠." 두 쌍의 커플은 해필리 에버 애프터. 그리고 사랑에 성별은 관계가 없다. 여자든 남자든 내가 나 자신이면 충분할 뿐!


뜨거운 것이 좋아(1959)

이 영화는 빌리 와일더와 마릴린 먼로의 두 번째 합작품이다. 첫 번째 합작품은 '7년만의 외출'. '7년만의 외출'에서 이름도 없이 7년간의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중년 남성의 환상 속 여성으로 약간 모자란듯 예쁘기만 하게 이름도 없이 등장하던 마릴린 먼로는 4년만에 미국의 자본주의적 세태와 성별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뜨거운 것이 좋아'로 돌아왔다. 마릴린 먼로는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고자 이 영화에 출연했으나, 이 영화에서도 마릴린의 역할은 약간 모자란 듯한 백치미가 있고 그로 인해서 마릴린의 이미지는 백치미를 가진 섹스심볼로 굳어져버렸지만... 마릴린이 영화들에서 맡은 역할을 잘 보면 꽤나 깊은 논쟁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인들'을 보면 마릴린이 맡은 역할은 단순히 세 남자 사이에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잊어버려가고 있는 인간성과 그 본질적인 어떤 것에 대한 중요성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고 상기시키는 상징적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얼마 남지 않은 야생마들을, 망아지까지, 죽여 동물 사료로 먹이기 위해서 잡는 세 남자의 모습을 보며 "살인자! 도살자!"라고 계속해서 외치는 마릴린의 연기는 마치 연기가 아닌 듯한 절규다. 마릴린 먼로는 약간 고개를 치켜들고서, 가슴선이 깊숙이 파인 옷을 입고, 백치같은 웃음을 지으며 눈을 느릿하게 내리깐 모습이 가장 유명하지만, 마릴린 먼로는 다만 그런 섹스심볼의 이미지로만 소비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다. 군수공장에서 일을 하던 노마 제인이 헐리우드 최고의 스타덤에 오른 마릴린 먼로가 되고 36세에 요절하기까지,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다. 당신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20세기 중반에 인종차별과 여성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던 마릴린 먼로를 당신은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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