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5개
어릴 적 조약돌 5개만 있으면 하루 종일 동생과 놀 수 있었다. 장난감이 많지 않던 시절 마당 있는 집에 산 덕분에 동생과 나는 공기놀이를 좋아했다.
마당에서 하는 공기놀이는 어린아이 손에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멀리 떨어진 돌을 한 번에 주워야 하니 땅바닥을 쓸듯이 돌을 주워야 했고, 이 행동이 손에 상처를 남겼다. 공기놀이가 뭐라고 서로 지지 않으려고 그 아픔을 참아가며 했다. 나중엔 손이 아파 공기를 할 수 없게 되지만,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심산에 참아가며 한 것이다. 영광의 상처라 해야 하나? 아쉽게도 상처가 나을 때까지 공기놀이는 안녕! 해야 했다.
동생과 나는 싸우지 않고 잘 지냈다. 공기를 할 때도 조금 건드려도 그냥 넘어가고, 정말 떨어뜨리면 죽는 줄 알았다. 특별히 싸운 기억이 없다. 지금도 동생은 늘 한결같이 언니 팬이다.
내가 학교를 가면서 공기놀이에 전환점이 생겼다. 돌멩이가 아닌 플라스틱 공기를 본 것이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데 색깔도 예쁘고, 가볍고,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도 수월했다. 바지 주머니, 윗도리 주머니, 가방 어느 곳, 필통 속 등 이 공기는 지니기도 쉬웠다.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다.
그 당시 집 인근에 공사하는 곳을 보면 돌멩이를 수북하게 쌓아놓은 곳이 있다. 큰 돌, 작은 돌 섞여 있어서 공깃돌로 쓸만한 것이 많았다. 시멘트에 섞어 넣을 돌이었던 것이다. 아저씨들은 돌의 크기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는지 우리가 공깃돌을 주우면 "그래, 공깃돌 할 만큼만 가져가라~" 하신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인부들이 있을까? 위험하다고, 가져가면 안 된다고 죄인 취급할 듯하다.
동생과 나는 공사장 인근에서 공깃돌로 사용할 돌을 많이 주워왔다. 많을수록 여러 명의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해서 많이 모으는 사람이 1등을 하곤 했다. 그 돌이 우리 집 마당 한편에 있었다. 동네 친구들이 골목에 모여 공기놀이를 할 때 편먹고 한다. 그러다
"야, ㅎㅎ 너 이거 건드렸어. 그만 내 차례야"
"아냐, 안 건드렸어"
"아냐, 건드렸어"
"아냐 아니라니까"
"아냐 건드렸어"
"야, 나 안 해" 공깃돌을 던진다.
"야, 이거 우리 공기거든? 왜 던지고 난리야?"
" 흥^^"
"야, 너 이제 우리 공기 할 생각도 말아"
결국 이렇게 싸움을 끝으로 헤어진다. 사실 공기를 던진 애가 이기고 있었다. ㅎㅎ
동생과 나는 공깃돌을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그리고 자리에 잘 둔다. 어차피 내일 그 애들과 또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동네친구니까. 공기는 우리의 보물이다.
플라스틱 공기가 가지고 싶었다. 플라스틱 공기는 방에서도 할 수 있고, 손에 상처가 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책상에서도 할 수 있는 가볍고 작은 공기였다. 공기 가격이 얼만지 기억은 없는데 하여간 엄마는 사주지 않았다. 엄마는
"마당에 공깃돌이 많은데 그거 왜 사?"
"그건 손이 안 아프단 말이야"
"손 아프면 안 하면 되지. 딴 거 하고 놀아"
"싫어. 방에서 할 수도 있는데 그거 사줘 엄마"
"안돼. 돈이 썩었니? 돌멩이를 사게?"
결국 아빠가 사주셨다. 새끼손가락에 상처도 나지 않고, 추울 때 방에서도 할 수 있데 왜 안 사줬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 당시 공기를 사주지 않는 엄마가 많이 미웠다.
플라스틱 공기 안에는 조금만 쇳덩어리가 한 개씩 들어있다. 공기를 하다 보니 이게 가벼워서 조금 무겁게 하려고 그 공기를 해체시키도 했다. 공기를 입으로 물어 겨우겨우 열고 그 안의 쇠덩어리를 꺼낸다. 그 쇠덩어리를 공기 한 알에 두 개씩 넣으면 묵직해진다. 공기 10알이 5알로 주는 순간이다. 겨울방학이 되면 이런 짓을 하면서 놀곤 했다.
그리운 조약돌 5알
23년 10월 처음으로 동생과 여행을 갔다. 거제 몽돌해변! 거제의 몽돌은 공기로 쓰기에 적합했다. 어릴 때 공기하던 추억을 얘기하며 한바탕 웃었다. 바닷가의 조약돌이 참 예쁜데 짚어 올 수는 없었다. 동생과 내 인생의 좋은 추억의 동반자 "조약돌 5알!" 동생과 나의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