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가 건네는 "너 자신으로 살아도 충분하다"는 위로
밤 11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켭니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자 화려한 세상이 펼쳐집니다.
동기생의 승진 소식, 친구의 유럽 여행 사진, 완벽하게 정돈된 누군가의 거실.
그 네모난 세상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확신에 차 있고 행복해 보입니다.
화면을 끄고 나면 천장에 덩그러니 남는 건 '불안'입니다.
"나만 이렇게 뒤처지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릴까?"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나'가 되라고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평범함은 죄가 되고, 멈춤은 도태로 여겨지는 이 숨 막히는 레이스에서,
400년 전 자신의 성(城) 탑에 숨어 오직 '자기 자신'만을 관찰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바로 미셸 드 몽테뉴입니다.
몽테뉴는 당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판사였지만, 38세에 돌연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서재에 틀어박혀 자신을 관찰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위대한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아는가? (Que sais-je?)"
그는 인간이 대단한 이성을 가진 존재 같지만, 실상은 사소한 날씨 하나에도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배가 아프면 심각한 철학적 고민도 잊어버리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했습니다.
현대인인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나는 흔들려선 안 된다'는 강박 때문입니다.
하지만 몽테뉴는 말합니다. 인간은 원래 변덕스럽고, 모순덩어리이며, 불확실한 존재라고요.
당신이 오늘 느낀 우울과 불안은 당신이 못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기 때문에 겪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며 괴로워합니다. 인스타그램 속의 완벽한 타인을
보며 주눅이 들 때, 몽테뉴의 이 통쾌한 한마디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갈국 우리는 자신의 엉덩이로 앉아 있을 뿐이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CEO도, 화려한 인플루언서도 결국은 우리처럼 밥을 먹으면 배설을 해야 하고, 감기에 걸리면 콧물을 흘리며, 사소한 말실수에 이불을 걷어차는 똑같은 인간입니다.
몽테뉴는 자신의 저서 《수상록(Essais)》에서 자신의 신체적 결함, 성적인 취향, 사소한 습관까지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봐라, 나도 이렇게 별로다. 그러니 너도 너무 애쓰지 마라."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의 솔직함은 400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몽테뉴의 철학을 어떻게 우리 삶에 가져올 수 있을까요?
판단 중지하기 (Epoche) : 불안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해결하려 들거나 자신을 비난하지 마세요.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내 마음이 또 날씨처럼 흐리네." 하고 그저 바라보세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할 때, 마음의 평화(아타락시아)가 찾아옵니다.
'나'라는 가게의 단골손님 되기 : 몽테뉴는 "내 삶의 직업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취미나 공부 말고, 오직 내가 기분 좋아지는 사소한 일에 집중해 보세요.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좋아하는 멜론 빵 사 먹기 같은 것들이면 충분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되, 현재를 즐기기 :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니 지금 이 순간 멜론을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거창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대신, 지금 내 앞에 놓인 커피 한 잔의 향을 온전히 느껴보세요.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부족하고, 자주 흔들립니다. 하지만 몽테뉴는 그 흔들림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오늘 밤은 타인의 삶을 훔쳐보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세상에서 가장 불완전해서 가장 아름다운, 거울 속의 나를 한 번 안아주는 건 어떨까요?
"당신은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히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