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들과 만날 시간이 되었다. 1층에 내려가보니 서ㅇㅇ선생님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저녁장소는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만치에 녀석들의 얼굴이 보였고 우리를 보자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옛날 소년시절의 앳된 얼굴들이 아니어서 잠시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망설였다. 남편은 그동안 한 두 번 만난 것 같았는데 나는 ㅇㅇ교회를 떠난 후 처음 만나는 녀석들도 있었다. ㅇ희가 그랬다. 처음 ㅇㅇ교회에 갔을 때 ㅇ희는 초등학생이었다. 내 기억엔 그때도 별로 말 수가 없었고 어른스러웠다. 누가 봐도 반듯한 아이였다. 함께 자리한 형들은 그동안 우리가 있던 나눔의 집으로 찾아와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ㅇ희는 ㅇㅇ교회를 떠난 후 처음이었다. 여전히 의젓하고 반듯해 보였다. 어색함을 떨쳐보려고 내가 먼저 농담 섞어 말을 건넸다. “의사 선생님한테 내가 ㅇ희야, 이렇게 이름을 불러도 되니? “내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은 바로 ”사모님께 저는 영원히 ㅇ희예요! “라고 대꾸했다. 그 말이 고마워서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ㅇ희한테는 친형 같은 교회형들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들도 고작해야 ㅇ희보다 많아야 서너 살 위 형들이었는데도 ㅇ희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잘 지냈다.
그때 이미 녀석들은 평생 함께 할 친형제들 같아 보였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 들어가 밀린 이야기들을 하는 사이 어느 녀석이 갑자기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ㅇ진이한테 전화를 걸어 몇 마디 나누고 나서 남편과 나를 번갈아 가며 바꿔주었다. 녀석은 여전히 넉살 좋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ㅇㅇ님은 왜 이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세요!”라고 말하더니 나한테는 “사모님은 여전하시네요! “하면서 반가워했다.
커다란 호수 둘레길을 천천히 함께 걸으며 옛날이야기들도 서로 번갈아가며 소환(?)해 나누었다. 잊지 못할 한여름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