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밑바탕은 무엇보다 어휘력이 탄탄하게 받쳐줘야 한다.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어쩌다 버스나 전철 안에서 할머니와 나이 어린 손주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될 때가 있다. 궁금한 게 많고, 말하기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손주와 할머니의 대화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옆에서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 그 아이의 부모, 집안 분위기, 식구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까지 어림잡아 짐작이 되곤 한다.
남편이 서울 대학로교회에서 목회를 했을 때다. 사택이 돈암동에 있었다. 매주 수요일 아침에 예배가 있어 전철을 타면 할머니와 서울사대부속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손주가 나란히 앉아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가 있었다. 대부분은 손주가 질문을 하고 할머니가 대답을 했다. 오래전의 일이라 손주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가 어떻게든 손자가 알아듣기를 바라며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말투로 설명을 하는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 손주가 어렵다고 느낄만한 단어일 듯싶으면 이야기 도중에 따로 떼어내 예화까지 들어가며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했다. 손주의 질문과 할머니의 설명이 오고 가는 가운데 여러 낱말들이 함께 탁구 랠리(?)처럼 할머니와 손주사이를 날아다녔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봄직했을 말놀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처럼, 놀이 규칙을 아이의 단어 확장 학습에 끌어 와 보는 방법도 있다. 다만 놀이를 통한 어휘력의 발달유통기한(?)은 내 경험으론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무렵까지였다. 그 후에는 책 읽기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깊이를 더해갔다. 또래친구들과의 만남도 중요하다. 훗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누구나 이해하고 인정하는 품격이 깃든 어휘력을 갖춘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면 가족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중요하다. 명절 때만 겨우 잠시 만나, 각자 전화기만 쳐다보다 헤어지는 게 현실이다 보니, 사촌끼리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조차 어색할 만큼 데면데면한 사이가 돼 가는 게 안타깝다.
명절 때 모든 가족들의 전화기를 압수(?)하고 식구 중에 대표 한 명이 관리하게 한다는 어느 분의 sns글은 그래서 신선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