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오늘 더 다정해져요>를 패러디했습니다.

은퇴한, 은퇴를 앞둔 1960년생 남편들께

by 시골사모


내가 당신한테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저 좀 더 다정해졌으면 해요. 어쩌면 당신한텐 용기가 아주 많이 필요할지도 모르죠. 각자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집안일을 나누어 맡아하다 보면 옛날, 스무 살 언저리에 만나 가슴 뛰게 만든 서로의 모습이 떠오르고 멀리 떠나 간 연애감정이 퐁퐁거리며 샘솟을지도 몰라요.


다정하다는 건… 교회청년회 수련회 갔을 때 내가 혼자 징검다리 건너 개울가로 쌀 씻으러 간다고 하니 당신이 걱정하는 척하며 쌀바구니를 빼앗아 개울가로 성큼성큼 뛰어가던 모습일 거예요. 그때 조금 멋있어 보였어요.


다정하다는 건… 얼마 전까지의 당신 모습처럼 “일 좀 도와달라”라고 부탁할 때 “무슨 일을 언제 어떻게 도와 달라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라고 엄청 논리적인듯한 대꾸를 하는 것보다 가끔씩 ”내가 뭐 도울 일 없어? “ 먼저 물어 봐 주는 거예요. 어쩌면 일처리에 관하여 분명하고 계획적이고 구체적인 당신에겐 용기가 조금 필요할지도 모르죠.


내 부탁이 다소 설명이 부족하고 낯설더라도 ”어, 그래! 어떻게, 무엇부터 하면 되는 거지?”라고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로 말해 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부탁하는 내가 당신에게 긴 설명을 하다 말고 지쳐서 “아, 됐어. 그냥 내가 할 게! “라고 우리 둘 다 상처받는 대꾸를 하지 않을 거예요.


다정하다는 건, 옛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던 백성들을 진심으로 불쌍히 여겼던 마음과 같을 거예요. 예배문의 한 구절,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와도 같고요.


며칠 전 아파트 뒷산을 산책할 때 미끄럽고 좁은 비탈길을 앞서 내려가, 나에게 다정하게 손을 내밀고 기다려준 당신, 정말 고마웠어요. 쑥스러워 잠시 머뭇거리다 ”고맙다 “ 는 인사를 놓쳐서 미안해요. 은퇴를 하고 날마다 당신과 하루를 함께하니 의외로 당신의 섬세하고 다정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나 역시 교회 울타리 안에서 늘 긴장하며 살다가 은퇴 후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 듯합니다. 아무튼 <이제 우리, 서로 좀 더 다정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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