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ㅇㅇ형님의 형수님 2.

by 시골사모

함께 잠까지 같이자며 하루를 지내다 보니 형수님의 소녀 같고 다정한 모습을 가까이에서봴 수 있었다. 남편과 나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챙겨주시는 모습에서 그 진심이 느껴졌다. ㅇㅇ이 형님네도 남편 형제들처럼 똑 같이 8남매이다. 우리는 여섯이 아들이고 딸이 둘인데 ㅇㅇ이 형님댁은 아들이 ㅇㅇ이 형님 한분이다. 위로 누님들이 여섯에 아래로 여동생이 한 명이다.


남편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 방학 때가 되어 기숙사가 문을 닫으면 제기동, 형님과 형수님의 한옥 집에서 ㅇㅇ이 형님과 함께 한방을 쓰며 지냈다. ㅇㅇ이 형님과 남편은 이번 만남 때 그 시절 같이 한방을 쓰던 추억 어린 이야기들을 한참 동안 나누었다. 또 다른 한 방에는 남편보다 아래였던 형수님의 여동생이 머물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고물상을 하셨고 ㅇㅇ이 형님 부모님은 원주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남편의 둘째 누나는 “우리 부모님은 돈을 벌면 현금으로 쌓아두셨고,ㅇㅇ이 형님 부모님은 집이나 땅을 사 모으셨다”라고 말하곤 했었다.ㅠㅠ


이번에 ㅇㅇ이 형님께 전해 들었는데 독실한 가톨릭신자 이셨던 사돈 어머님은 헌금과 기부,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몇 군 데 가톨릭 재단의 양로원과 학교에 꾸준히 기부와 장학금을 전달하셨다고 한다.ㅇㅇ이 형님과 형수님은 어머님의 뜻을 이어 후원과 기부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하셨다. 사돈이지만 고맙고 자랑스럽다.


남편과 함께 한집에서 지냈던 형수님의 여동생은 한의사가 되어 우리 집 가까이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여름, 은퇴와 이사, 낯선 환경 때문에 몸이 안 좋을 때 남편이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약도 지어오자.”라고 말해서 갔더니 원장이 형수님의 여동생이었다.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왜 형수님 동생의 병원이라는 걸 말 안 했냐고 물었더니 “미리 알면 혹시 안 따라나설까 봐 그랬다. “라고 대답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다만 약 값이 좀 비싼듯했다.

……생전처음 한약을 마지막 한 봉지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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