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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숙 Mar 08. 2024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앙상한 나뭇가지와 황량한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계절이 어느덧 벚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의 향기로 거리를 꽉 채운다. 아직은 바람이 따스함보다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지만 이곳저곳에 피어 있는 개나리와 여러 종류의 꽃들을 보면서 삶의 활력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

 나이가 들어 일상에 만족하며 안주함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때론 무료하고 따분한 삶이 연속되어 지루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단지 나이가 듦에 무료함이나 불편함만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에겐 두 명의 손녀가 있다. 첫째 손녀는 세 돌이 지났고 둘째는 한 달이 되었다.

 이제 겨우 세 돌이 지난 첫째 손녀는 총명함으로 가득하다. 성경의  구절을 세 번만 들으면 외워버린다든지, 엄마가 읽어준 동화책의 그림을 보고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런 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은 마치 천국에서 경이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첫째 손녀가 기분이 좋아 소파나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하면 덩달아 나도 반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나를 보면서 첫째 손녀는 마치 친구 같은 느낌으로 나를 대하곤 한다.

 얼마 전 딸이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동생에게 수유하는 모습을 본 첫째 아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불쌍하다’라는 말을 연속적으로 반복한다. 어린 동생에게 엄마의 사랑을 빼앗겨 버린 첫째 손녀의 아픈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제민천을 따라 산책을 하며, 헤엄치는 오리를 보고 웃으며 즐거워하던 첫째 손녀가 너무 예뻐 꼬옥 안아주면 ‘너무 세게 안지 마’라며 뿌리치기도 한다. 제민천가에 만들어진 무대에 올라가서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꾸물꾸물 춤을 추다’라고 노래를 부르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율동을 하며 몇 곡의 노래를 불러도 무대에서의 흥이 가시질 않는다.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추스른 후 집으로 돌아온 딸과 한 달이 지난 둘째 손녀는 나와 함께 며칠을 보냈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감기를 줄곧 달고 살아온 첫째 손녀는 잠시 친할머니 댁으로 가서 아빠와 생활을 했었다. 며칠 동안 이산가족처럼 지내다 딸의 가족은 다시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첫째 손녀는 아기와 처음 만나는 대면식이기도 하다.

 새로 태어난 아기와의 만남이 사뭇 걱정이 되었던 나는 첫째 손녀에게 아기를 안아 보라고 하였다.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해 첫째 손녀의 눈빛이나 태도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첫째 손녀는 동영상 속의 자신의 어린 시절 아기였던 모습을 보며 새로 태어난 아기와 비교를 하며 신기해한다. 이렇듯 첫째 손녀와 아기와의 소통과 공감의 감정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 되어진다.

 어느 누구에게나 누구를 만나든 삶의 한순간 한순간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

 딸이 학교에 다닐 때에는 친구가 너무 많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많지 않았다. 요즈음 딸은 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엄마와의 친밀함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낀다.

 부모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움의 손길을 펼치며 가장 가까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풍성한 은혜의 축복을 누리는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손녀를 안고 한쪽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으면 무엇을 아는 듯이 눈을 또렷하게 마주친다. 잠을 자다 깨어 잠깐 칭얼대기라도 하면 무릎 위에 아기의 조그만 몸을 올려놓는 순간 새근새근 바로 잠이 들어 버린다. 누워 있는 것이 불편해서 몸을 뒤척일 때 얼른 안아 주면 심장의 박동 소리와 함께 편안함을 느끼며 가만히 나의 얼굴을 쳐다본다.  

 봄의 싱그러움으로 물들인 연녹색의 빛깔이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아기의 연약함과 어우러져 계절의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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