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나의 20대 후반을 보내게 해 준 고마운 회사
어제 다니던 회사에 공식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통보기간이 2 달이기 때문에, 5월 말까지는 아직 이 회사 사람이지만, 시원 섭섭 + 복잡 미묘한 이 감정, 군대 전역했을 때를 제외하고 정말 오랜만이다. 아무래도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해 준 너무나도 고마운 회사이기에 이런 기분이 들지 않나 싶다. 마지막 감사의 의미로 나의 첫 회사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서유럽과 북유럽 11개국의 총괄 데이터 애널리스트로 수많은 유럽 사람들을 만났다. 가끔씩 있던 회사 내 콘퍼런스 때는 수백 명 앞에서 발표하는 엄청난 기회도 가져보고, 많은 유럽 국가들로 출장을 다니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어릴 적 티비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유럽의 직장 문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예로, 네덜란드와 벨기에) 너무나도 다른 문화, 그러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애정, 등 일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많은 것들을 배웠다. 돌이켜 보면 꿈같고 하나같이 소중한 기억들이다.
두 번째로, 유럽계 대기업에 있으면서 '좋은 회사'란 무엇인지, 또 그것이 얼마나 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슬프게 하는지도 느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에게 좋은 회사란, 월급 많이 주고 휴가 많이 주는 회사였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 좋은 회사를 규정하는 큰 기준으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사람을 위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는 것을 최근에 느끼게 되었다. 얼마 전 시작된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의 전쟁이 발생하자마자, 우크라이나 지부에 있는 약 100명가량의 직원과 그의 가족들 전부를 안전한 인근 나라로 이주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대부분이 4인 가족이라고 했을 때, 400명가량의 안전이 나라가 아닌 회사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훗날 만약에 내가 회사를 운영한다면 꼭 가져가고 싶은 부분이다.
그 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장점이 있던 회사였지만, 이제는 마침표를 찍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한다. 이직을 결심한 몇 가지 이유를 말해보자면, 첫 번째로, 이 회사로의 입사 후에 내 인생은 거의 완벽에 가까워졌을 만큼 풍족해졌다. 꿈의 연봉과 수많은 혜택들, 또 가장 중요한 너무나 좋은 동료들까지. 이 완벽에 가까운 모든 것들은,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도 (위험하리만치) 달콤해서, 이직이나 창업 같은 딴생각 자체를 막아버렸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계속해서 내가 지금 성장하고 있는지, 혹은 현실에 안주해서 성장하는'척'을 하는 건지, 등을 나에게 물어보면서 이직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는, 수만 명이 근무하는 대기업 속의 한 사람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본사의 어떠한 전략적 방향성이 마음에 들지가 않아도, 당연히 목소리는 낼 수 있지만 그 전략 자체를 수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비슷한 이유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면서, 내 손에서부터 전략을 짜서 조직에 영향력을 만들고 싶은 갈증 같은 것이 생겼었다. 또 우연인지 그러던 와중에 한 스케일업 정도 규모 (지금은 900명 정도의 직원이 있다)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고 그곳과 여러 번의 인터뷰 과정 끝에, 이직을 결심했다.
누가 들으면 미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꿈의 대기업에서,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스케일업으로, 그것도 연봉을 왕창 깎으면서 이직을 하는 것을 말이다. 이직한다는 것에 대해 설레는 것은 당연하지만, 더 솔직하게는 두렵기도 하다. 이제는 너무나도 편해진 일하는 환경, 회사 문화, 배경 지식,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혜택 등을 전부 뒤로하고 새로운 회사에서 (같은 암스테르담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Senior급으로 하나하나 내가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얻어 갈 엄청난 기회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살면서 후회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대부분 후회할만한 일이 생기면 어떠한 노력이라도 해서 그 일을 기회로 바꿔버렸던 것 같다. 이번에 내가 한 결정도, 절대적으로 내 인생의 기회로 만들 것이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내 마지막 20대 후반을 누구보다 찬란하게 만들어준 전 회사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글거리지만, 찬란하다 - 말고는 내 경험을 더 잘 표현해줄 단어가 없다 :) 회사 나간다고 했을 때 세 번이나 잡아줘서 고맙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회사 내에서 찾아주려고 해 줘서 고맙고, 결국에는 내 비전을 이해하고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해줘서, 정말, 정말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