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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Aug 09. 2023

[서평] 과학이 궁금했던 유시민의 이야기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유시민 

 유시민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바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늘 인문학을 이야기하던 그가 이번에는 과학을 꺼내 들었다.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유시민 씨가 새 책을 냈다고 했을 때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바로 작가의 생각이다. 다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할 뿐 아니라 정보에 접근하는 신중한 태도, 그리고 그것을 읽어내는 통찰력,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누구에게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화법. 이미 그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사실상 책의 제목이나 그 책의 정체성보다도 작가가 하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유시민은 대표적으로 인문학을 이야기해 온 사람이다.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건축과 같은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가 여러 콘텐츠에서 종종 과학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책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책 표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유시민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학습해 온 과학에 대한 여정서다. 6개의 챕터는 그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1장은 인문학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그럴듯한 이야기와 확실한 진리), 2장은 뇌과학(나는 무엇인가), 3장은 생물학(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4장은 화학(단순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5장은 물리학(우리는 어디로 왔고 어디로 가는가), 6장은 수학(우주의 언어인가 천재들의 놀이인가)이다. 책에서도 고백하듯 ‘운명적 문과’였던 그가 과학에 관한 책을 썼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렇게나 많은 분야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책의 내용을 채워갔다는 것도 놀라웠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1장의 내용이다. 문과와 이과로 나눠서 학습을 진행해 온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그가, 수학을 잘하지 못하여 운명적 문과가 되었음에도 과학에 빠져들게 된 이야기. 그는 ‘거만한 바보’라고 이름 붙인 제목에서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는다. 과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 유시민의 고백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단순히 과학에 무지했던 자신을 낮춰 표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인문학에 제기되어 왔던 위기론이나 약점을 과학을 통해 살펴보면서 그 장단점을 구분하고, 인문학과 과학에 대한 각기 다른 역할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지식을 많이 쌓은 사람이 새로운 분야에서 눈을 뜨는 경험을 하게 되면 거기에 열광하기 쉽다. 맹목적인 찬양이나 자신이 지금껏 알고 있던 지식에 대한 무력함 같은 것을 토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는 과학이 가진 강점과 인문학의 약점을 설명하면서 인문학과 과학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냉철하게 구분한다. 동시에 과학이라는 학문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 쏟아질 수 있는 비판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그가 지금껏 많은 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솔직한 태도 그대로. 인문학에는 인문학만의 역할이 있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그의 시각은 참신했을 뿐 아니라, 이 책이 앞으로 보여줄 균형점을 미리 짚어주는 것 같았다.      



 2장부터 6장에서는 과학의 각 분야의 거대한 틀을 설명하고, 그 안에서 유시민 작가가 흥미로웠거나 새로 얻은 지식이 작가의 인문학적 소양과 만나 펼쳐낸 사유를 적어낸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과학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철학자는 모른다는 말도 무언가 아는 것처럼 한다’는 문장이나, 2천4백 년 전 중국 사람 혹은 소크라테스를 우리가 기억하는 이유(그 이유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라), ‘ESS 모델’에서 찾아낸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 이유,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 한 인간이 자신의 가치관을 정반대로 뒤집는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이 그러하다. 과학적 지식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와 인문학의 현상을 해석하는 유시민 작가의 사유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과연 이 책이 유시민 외의 독자들을 과학에 친숙해지도록 이끌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쉽게도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겼다던가, 과학 지식이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은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과학을 통해 얻은 유시민 작가의 깨달음을 접하는 즐거움만 있다. 앞서 언급했듯 대다수의 독자들이 애초에 기대하는 바가 그것이겠지만, 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도전과 각 파트를 나눠 접근한 책의 구성에서 기대되는 ‘지식 습득’은 성공적이지 못한 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나뉠 듯하다. 자신이 무엇에 초점을 두었느냐, 무엇을 기대했느냐. 애초에 유시민의 생각이 궁금했던 작가의 팬이라면 이 책 또한 만족스럽게 읽겠지만, 팬은 아니지만 유시민 작가가 과학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 궁금했던 독자라면 조금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 실망의 원인, 이 책이 아쉬웠던 점은 다름 아닌 ‘지식’이다. 의외라고 느낄 수 있을 텐데, 사실 과학 지식이란 측면에서는 유시민 작가보다 인문학적 발화가 가능한 과학자의 책들이 더 친절하고 상세하다. 각 장 안에서 다뤄지는 지식의 비율은 작가가 과학을 공부하면서 꽂혔던 부분,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에 치중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지식 자체보다는 작가의 사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번 책에서 느꼈던 것은 가끔씩 작가의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뭐랄까, 어떤 대목에서는 느닷없이 급발진을 한다고 할까. 마치 책을 통해 평소 느꼈던 불만을 하소연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쓰인 내용은 작가의 의도는 파악이 되지만 독자로서는 썩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진짜 의외라고 느꼈던 것은 작가의 전공 분야인 경제 대목이었는데, 작가가 가장 잘 알고 익숙한 경제를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썩 와닿지 않았다. 내가 경제 분야의 소양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유시민이라면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자신의 지식 안으로 끌어들여 설득해내지 않는가.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몇몇 부분에서 작가의 그 장점이 발휘되지 못한 인상을 준다. 

 이런 군데군데의 매끄럽지 못한 마감이 책을 읽는 눈에 거슬렸다고 해서 책에 대한 평가가 크게 좌지우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 책에 대한 기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평가는 갈릴 것이다.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과학을 통해 본 인문학 혹은 한국 사회라는 식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각 장도 과학 세부 분야로 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유시민 작가가 얻은 커다란 사유의 키워드, 혹은 그걸 드러내는 관련 이슈를 내걸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유시민을 통해 과학을 공부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유시민이 설명하는 과학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는 마음가짐으로 바뀌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이 책은 훨씬 부드럽고 편안하게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지 않았을까. 그 과정에서 뒤늦게 과학 공부에 뛰어든 작가처럼 몇 가지 과학 지식도 ‘얻어들을’ 수 있을 테고. 



 아쉬움을 드러내긴 했으나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앞서 언급했듯 유시민 작가의 사유다. 그리고 그 사유를 지켜보며 나의 사유를 확장해 나간다는 점이다. 나는 한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인간이 사는 이유를 깨달았다는 유시민 작가의 고백을 듣고 큰 도움을 받은 적 있다. 인생을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는 시각적 전환을 얻었다. 무려 <이기적 유전자>를 읽지도 않고 말이다. 이처럼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흥미로운 사유거리가 이 책에는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논쟁적으로 봤던 것은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누군가의 사상적 전향을 그 사람의 자유 의지만으로는 볼 수 없다는 작가의 주장과 또 다른 하나는 친족이 아닌 타인에게 인간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작가는 여기에 과학적 지식을 들어 나름의 이유를 붙이는데, 나는 동의를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용이 있었다. 아마 여기에 찬반이 갈릴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다른 이유를 대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작가가 던진 사유의 파장이 나에게 새로운 사유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짧은 분량임에도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질문과 반박, 그리고 수긍이 오가게 되는 것이 이번 책이다. 책의 내용이 만족스럽건 만족스럽지 않건,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는 동안 당신은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과학을 공부하겠다면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 공부를 시도해 봤다가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의 사유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그가 던지는 질문에 나의 사유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은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책의 기획과 접근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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