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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Jan 08. 2024

우리가 등한시했던 이 세상의 70퍼센트에 대한 이야기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 헬렌 M. 로즈와도스키 

     “이 땅을 지구라 부르다니 참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지구는 아무리 봐도 봐도 바다인데.”

      (“How inappropriate to call this planet Earth when it is quite clearly Ocean.”)     

 

 1972년 지구 전체를 찍은 최초의 사진 ‘푸른 구슬 같은 지구(Blue Marble)’을 보고 유명 SF 소설가 아서 C. 클라크가 한 말이다.      


1972 Blue Marble

 지구의 70퍼센트는 바다로 되어있다. 하지만 인류는 땅에서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육지 중심의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다. 지금이야 바다 위로 수많은 선박들이 오가고 환경 문제로 인해 바다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해양으로 눈을 돌린 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인간은 언제부터 바다를 이용하게 되었고, 어떠한 이유로 바다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인류와 바다의 상관관계를 단순히 역사적 기술에서 그치지 않고 문명의 발전과 철학, 그리고 시대적 상황 등과 맞물려 설명한 것이 헬렌 M. 로즈와도스키의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다.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책 표지 

 책은 1장부터 7장까지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책은 그리 두껍지 않고, 종이책의 경우 무게도 무겁지 않다.)     


 1장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바다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바다가 어째서 생명의 기원이라 여겨지는지를 기술한다.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지구와 바다의 형성에 관한 가설들이 충실하게 반영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1977년 해저에서 발견된 심해 열수구가 생명체 진화의 키워드일지 모른다는 가능성과 함께 바다에 어떤 생명체들이 생존했는지 풀어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이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학창 시절 단순히 암기에 그쳤던 그것들이 왜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 배웠다.           


 그 외에 놀라울 정도로 생명체가 급증했던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라든가, 상어가 공룡시대에도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류가 수렵 채집에서 농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바다와 연관시킨 대목이 가장 흥미로웠다.      


 <사피엔스>나 <총균쇠> 같은 유명 인문학 서적을 보면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있다. 인류가 수렵 채집에서 농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미스터리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통 문명의 발전 단계라고 인식하지만, 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농업으로의 전환은 수렵 채집만으로 충분히 먹고살 만했던 인류에게 불리한 점이 많았고, 개인의 삶이란 측면에서도 노동시간의 증가 등으로 불행해졌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왜 농업으로 넘어가게 되었을까?      


 저자는 인간이 육지에서 생활했을지라도 먹을 것이 풍부했던 바다를 벗어나기 쉽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인류의 커다란 문명이 강 유역에서 탄생한 것처럼 수렵 채집 시기에는 해안가에 인접해 생활했을 것이다. 이는 커다란 이점을 갖는데, 해안가에 떠밀려온 해조류나 조개를 줍기만 해도 되니 어린 아이나 노인들도 식량 공급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빙하기가 끝나던 7천 년 전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었고 거주 가능했던 해안지대 대부분은 물에 잠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업이 1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저자는 해안에서 밀려난 인간들이 부족해진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 중심으로 생활방식이 발전했으리라 추정한다.      

 흥미로운 가설 아닌가? 이 식량과 바다라는 연결고리는 책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후 바다에 관한 신화를 다룬 2장을 지나 3장부터 본격적인 인류의 역사가 다뤄진다. 많은 이들이 상상하듯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대항해시대라 불리었던 중세부터가 이야기의 핵심이긴 하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나 알 법한 역사적 사실만으로 기술했다면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에 유럽이 바다에 주목했던 것은 11세기 민물 생선의 고갈로 먹거리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라는 점, 그리고 15세기 중반 오스만튀르크의 콘스타티노플 함락으로 극동 지역의 교역로가 차단되었다는 점이 바다, 특히 유럽의 서쪽을 향한 바다로 나아가게 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몽골 제국이 해체되면서 실크 로드라 불렸던 내륙의 무역로가 붕괴되었던 것과 지중해의 해적들이 강세했던 점도 영향을 끼쳤다.      


 결국 새로운 항로가 필요해졌고, 콜럼버스는 몇 가지 착오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새로운 땅을 발견한다. 인상적인 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신세계를 만났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다가 경계가 있는 유한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이후 마젤란의 세계 일주 덕에 모든 바다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후 인류는 바다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뛰어난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원동력이었음을 저자는 정확히 짚어낸다.           


 책의 중간에는 콜럼버스 교환이나 바다의 발견과 경험주의 철학의 연결, 새로 등장한 바다의 자유라는 개념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인류의 바다 진출이 경제적 이익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지적, 그것이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개발된 새로운 기술은 전쟁으로 굶고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바다의 어종을 남획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근해의 어종이 씨를 말라가자 인간은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갔고, 심해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가 현재도 즐겨 먹는 참치 캔, 고래의 남획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특히 고래는 단순히 고기뿐 아니라 화장품의 원료, 기름 등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고래잡이의 역사는 생각보다 긴 편인데, 고래를 쫓는 과정에서 해류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하였지만 정작 고래의 생태에 대해서는 지금도 무지하다. 인간이 어떤 관점에서 바다와 그 생명체들을 다뤄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구의 70퍼센트에서 온갖 식량과 자원을 뽑아내던 근대에는 바다가 무한한 가능성을 품었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그 결과 근해의 어종은 사라지고, 고래의 개체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와 생태계 파괴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이 한 번 발동 걸리기 시작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그 안에는 분명 경제적 이익이라는 원동력으로 기술 발전과 부의 축적을 가져왔다는 긍정적 현상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해양의 많은 생명체뿐 아니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아왔던 자원들을 상실했다. 한때 인간은 자신들이 이뤄온 기술력으로 바다를 복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래의 개체 수를 다시 늘리려는 그 시도가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인간의 오만한 착각이었음이 밝혀졌다.       


 인간이 바다를 이용해 온 역사는 전 지구적 환경 문제에 시달리는 현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라는 끔찍한 결정이 내려진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개인적으로는 방사능 오염수 방출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이로 인해 바다에 무엇이든 버려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인간의 태도 하나가 바다를 어떻게 고갈시키는지를 이 책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결국 이야기는 환경 문제로 이어진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그 점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생각이 자연스레 그리 흘러갈 뿐이다.      



 하지만 그 결론만으로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쉽다. 이 책에는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시대의 변화가 어떻게 인간의 철학에 영향을 끼쳤고, 그것이 다시 인류사에 공헌하였는지도 알 수 있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르네상스가 바다의 역사에 끼친 영향도 알 수 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뛰어넘어 인간 문명의 모든 영역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지켜보다 보면 정치, 철학, 문화, 과학, 심지어 문학까지 바다라는 키워드로 연결하는 저자의 지식에 놀라게 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끌어모아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데,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그런 내용이었다. 2023년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을 새해가 되어서도 놓치지 않고 소개하는 이유다. 당신이 등한시했던 이 세계의 70퍼센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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