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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Feb 14. 2024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기묘한 이야기

<고래> - 천명관 

 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2004년 출간된 작품으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이미 20년 전 소설이 최근에 다시 화자가 된 것은 2023년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그 이름이 알려졌다. 


 개인적으로는 수상 여부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을 꺼린다. 한국에는 오랜 잘못된 습관이 있는데, 외국의 평가에 따라 개인의 감상이 지워지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는 이유로 암울한 엔딩을 싫어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수상은 축하하되 개인의 선호에 따라 그 작품의 아쉬움은 토로할 수 있는 것이 건전한 모습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천명관의 <고래>는 총 421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다. 이야기는 20세기 중반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세한 시기를 적고 있지는 않지만, 기차가 막 놓이고 그 옆으로 국밥집이 있던 시절부터 장군으로 불리는 자가 거대한 권력을 횡횡하던 시절까지, 국밥집 노파와 그녀의 딸, 그리고 금복과 딸인 춘희 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얽혀가는지를 다룬 이야기다. 


 아마 한국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정래 작가라든가, 박경리 작가의 작품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고래>는 마치 그런 한국 소설의 계보를 이어받는 듯한 화법을 보여준다. 다루고 있는 시대상도 그렇고, 인물들의 운명을 풀어내고 그것을 엮어내는 방법도 그러하다. 아마도 국어 시험의 지문에서 보았을 법한 예전 한국 소설의 느낌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런 과거의 소설들은 아주 긴 시간에 걸친 서사를 갖거나 여러 등장인물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 구조를 주로 취하는데, <고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너무 장황해질 수가 있어 개인적으로 느낀 작품의 특징만을 적어두려고 한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를 보면 판타지적인 과장이나 신화 같은 요소가 섞여 들기도 한다. <고래>도 그런 특성을 담고 있다. 할머니가 화톳불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나 입담 좋은 재주꾼이 시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털어놓는 이야기, 천명관 작가의 소설은 그런 결의 매력을 지닌다. 그 특성이 등장인물의 운명을 좇아가는 과정에서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데, 뻔한 이야기 같지만 예상치 못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과장인 걸 알면서도 ‘예끼, 이 사람아’하며 계속 듣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고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한계를 갖기도 한다. 바로 재미와 입담(문장의 맛) 외에 얻어갈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은 금복이라 할 수 있다. 그녀가 겪은 평지풍파는 극적이기도 하고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교훈이라든가, 2024년의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입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서사와 맛깔난 문장에 치중된 소설이다. 그래서 문장을 읽는 재미,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즐거울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울림을 원하는 독자는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소설은 현재의 시점에서 미묘하게 불편한 지점을 하나 갖고 있는데, 바로 성 묘사다. 과거 한국 소설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래>도 적나라하면서도 노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설 곳곳에서 다루고 있다. 과거는 분명 지금보다 폭력적인 시대였고, 성 문제에 대한 인식도 달랐다. 그러니 그 시절에 일어났을 법한 성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몇몇 독자들이 불편해할 지점은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일 것이다. 성 이야기, 좀 더 정확하게는 성과 관련된 폭력적인 행태들을 다루는 묘사에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처럼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한 태도가 담겨있다. 모든 장면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좀 더 드라이하게 묘사했거나, 그 시절에는 흔하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일지라도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묻어났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희희낙락하며 성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성 의식이 억압되었던 과거에는 흔하게 보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작가는 웃음 이면에 가려진 폭력성과 상처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좀 더 명확했더라면 이 소설의 몇몇 장면들은 묘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성 문제에 좀 더 민감한 인식을 지닌 독자라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매력은 있으나 굳이 읽지 않아도 상관은 없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언급했듯 이야기가 주는 재미는 확실하나 그것 외에 얻어갈 것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춘희의 서사가 약하다는 점, 그 빈약함을 메우기 위해 좀 더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았나 하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과거 한국 소설들의 매력을 잘 알고 있거나 충분히 즐기는 독자라면 빼놓지 말고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제는 맛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화법이 이 책에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났을 때 그래서 왜 책 제목이 고래인지에 대해 다양한 담론으로 확장되기 어렵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이야기꾼 천명관의 상상력은 기대할 수 있는 틀 안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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