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카밀라 팡
저자인 카밀라 팡은 ADHD,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등을 겪으며 성장한 인물이다. 그녀는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이 엉뚱한 행성에 착륙했다고 생각할 만큼 주변인들과 세상에 섞여 들기 힘들어했다. 인간 행동을 외국어처럼 습득해야 했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스스로 이질적인 존재라고 느끼던 그녀는 다른 인간들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이라는 도구를 선택한다. 그리고 과학을 통해 인간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혼란을 정리해 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기록을 담은 것이 오늘 소개할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다.
나는 과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고 수용해 간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던 초반부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떠올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생의 큰 어려움에 빠진 저자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물고기 분류를 선구적으로 시도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빠져들고, 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습득했던 과학 지식으로 결국 자신의 삶을 수용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긴 여정에서 느꼈던 혼란과 당혹감, 그리고 안도감을 과학과 문학을 결합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그 때문에 과학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도 그녀의 여정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방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긴 여정이 끝날 때 그녀의 삶에 일어난 변화가 독자의 삶에도 와닿는 것 같은 묘한 울림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카밀라 팡의 책은 그보다 좀 더 거시적인 시도를 한다. 과학으로 인간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 안에 함께 어울리는 방법 또한 과학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이 책의 원제가 ‘Explaining Humans’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다만 그녀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적용한 과학 지식이 올바르게 매칭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것 같다. 저자가 스스로 밝혔듯 그녀의 방식이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부류에 속했고, 아마도 많은 대중은 그녀의 설명을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느꼈다. 그녀가 그 지식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떠나 적합한 비유로 인간 세계에 대입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그녀는 남들과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다. 지금은 양쪽을 모두 이해하기 때문에 자신을 통역사라고 일컫지만, 그녀가 대다수의 세계로 넘어오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은 어쩌면 그녀와 비슷한 부류이거나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많은 십 대처럼, 나도 내가 선호하는 세계의 형태를 정의하기가 어려우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질서를 만드는 것 자체만 힘든 게 아니라, 내 방식대로 만든 질서가 실제로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는지를 알아내는 것 또한 힘들다.
최적의 상태로 존재하고 또 살아가는 방식은 믿기 힘들 정도로 개인적이다. 주변 사람들과 타협하고, 그들의 욕구가 내 욕구처럼 개인적이며 깊이 새겨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한편, 나 자신의 주체성도 지켜야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디에 에너지를 쏟을지를 타인이 결정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가치는 조금 다른 데에 있다. 일단 ADHD,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고 대하는지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저자가 이에 대해 상세히 풀어놓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이해, 공감도 학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책은 공감의 시야를 넓히는 데 유용하다.
내 방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루를 헤쳐나갈 단서로 가득하다. 내 하루는 침대 오른쪽에 있는 실내 가운과 칫솔에서 시작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욕실로 가서 양치질하라고 내게 상기시키는 방법이다. 당신에게는 이 외의 다른 것들도 분명하게 괴상하게 들릴 것이다. 나는 약 먹는 것을 기억하려면 이벤트를 만들어야 하므로, “해그리드!”라고 소리치며 혼자서 춤을 춘다. 미친 짓 같겠지만 이렇게 하면 최소한 잊지는 않는다. 정말 중요하지만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무엇인가를 내가 기억할 가능성에 가중치를 더하는 행동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장황한 포스트잇 메모가 내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기시킨다. 양말을 신을 것, 엄마에게 전화할 것(포스트잇 두 개), 주머니에 5파운드가 들어있는 청바지를 세탁하지 말 것.
이것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인데, 우리는 종종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정돈 방식과 모든 조합을 상상한다. 이는 필터가 없는 거대한 풍경과 같아서 우리는 풍경 한가운데에 얼어붙은 채 고립된다.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생각과 공포가 눈부신 빛처럼 달려드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경험하지만, 다양한 감정과 불안, 충동, 자극을 분리할 선천적인 능력은 없다. 내게 또 하나의 거대한 공포의 대상인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면 끔찍한 소음이 내 몸 전체를 관통해 떠나갈 듯 울리며 내 감각을 새빨갛게 달군다. 오직 몸으로만 두려움을 느낀다고 상상해 보라.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이 군인처럼 단정하게 줄지어 설 때, 나는 항상 가능한 한 멀리, 더 빠르게 소음에서 달아났다.
또한 이 부분이 가장 유익한 포인트인데, 저자가 긴 방황 끝에 얻은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 적어 한국어판의 제목으로 차용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책에서 저자가 과학을 통해 설명하려 했던 내용이 와닿지 않아도 상관없다. 혹은 그녀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해도 괜찮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자기 자신을 수용해 가는 과정에서 얻은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담은 글이다. 그것은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수많은 도전과 시행착오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힘이 될 수 있는 말들이다.
지난 관계가 힘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당신의 이전 관계가 당신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관계의 가중치는 어쩌면 당신의 피드백 고리에서 지나치게 무거워서 새로운 관계의 장점을 판단하는 당신의 능력을 억누를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이든 과도한 자신감이든 우리는 특정 방식으로 감정을 느끼는 원인을 생각해야 하며, 앞선 경험에서 생성되어 우리의 기억 은행을 가득 채우고 피드백 고리에 영향을 미치는 감정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찾아야 한다. 일단 이 작업을 끝내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적절한 맥락에 집어넣고 그에 맞춰 가중치를 조절하기가 쉬워진다. 실수에서 배우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며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만큼의 객관성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가지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너를 위해서' 라며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지만) 자신의 질서를 당신에게 강요한다면, 이는 행동 통제에 해당하며 당신은 이런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스물세 살까지 흡연자와 술 취한 사람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이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고작 단순한 두려움 때문에 우정을 망쳐버렸다.
이 책은 나에게 반쪽짜리 책이었다.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없었고, 좋은 글귀는 존재했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위험할 것 같다. 누군가는, 저자와 비슷하든 비슷하지 않든, 혹은 저자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그녀의 책은 다른 방식으로 위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 당시 영국왕립학회에서 최고의 과학책 상을 수상한 이유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혹은 서사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과학을 통해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고, 소외된 것 같던 자신의 삶을 극복해 더불어 사는 데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책의 장점이라고 일컬은 부분에 끌린다면, 혹은 인용한 문구에 흥미를 느꼈다면 한 번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깨달음이 있다. 책을 읽는 여정 동안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가치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