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거주불능 지구> -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해가 갈수록 기후 변화를 체감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 위기를 언급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효과적으로 진행된 것 같지 않다.
기후 위기와 관련한 가장 큰 장벽은 기후 위기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과 그 요소가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가져다주는지 명확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왠지 사실을 단순화하여 과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명확한 원인을 제시하지 못하기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오늘 소개할 책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는 ‘이 책은 인류가 지구를 살아가는 방식에 지구온난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는 책이지 지구온난화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다루는 책은 아니’라고 적는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풀어놓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한다. 다만 기후 위기와 관련한 논쟁들이 늘 그렇듯 과학적 시시비비를 따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한 것 같다. 저자는 기후 변화라는 현상은 이미 벌어졌으며,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논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그 기후 변화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저자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뉴욕매거진>의 부편집장이자 칼럼니스트이고 미국 싱크탱크 기관의 연구원이다. 그는 2017년 7월 9일 지구온난화가 일으킬 수 있는 재난 시나리오 <거주불능 지구>를 <뉴욕 매거진>에 기고했는데, 이것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이 리포트를 기반으로 책을 쓰게 되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다>에서는 기존의 기후 위기와 관련한 통념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의 논조에 대한 반박까지 고려하여 아주 길게 이야기를 적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챕터였다. 대체로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기후 위기를 개인이 아닌 집단이 대처해야 하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부터 진행된 한국의 기후 위기 관련 운동에 몇 가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지나치게 개인 차원의 행동 지침만을 강조한다는 것이었다. 분리수거, 플라스틱 사용 절제, 친환경 제품 사용 등. 모두 의미 있는 운동이지만 전 지구 차원에서의 대처가 필요한 일에 개인의 행동 지침만을 강조하다 보면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책임감과 죄책감에 짓눌려 환경 문제에서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기후 위기가 사람들의 경각심과 위기의식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개인의 대처만을 강조하는 건 지속적인 참여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니 결국 정치가 나서야 하는 일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개인의 환경 의식을 높이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다. 정치는 결국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르게 돼 있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명확히 알고 있어야 정치라는 도구를 제대로 쓸 수 있다. 다만 개인 차원의 해결책에 멈추면 그 책임이 개인에게로 돌아가고, 결국엔 환경 문제에 관한 참여가 부담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바뀌어야 할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정치에 그 해결책을 요구해야 한다. 적어도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그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 책의 1부에서 펼쳐놓는 주장들도 거기에 근거한다.
2부에서는 기후 위기가 진행될 경우 벌어질 12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이야기한다. 그중에는 폭염이나 가뭄, 바다의 문제, 공기 오염처럼 익숙한 내용도 있지만, 질병이라던가, 빈곤, 경제와 시스템의 붕괴 같은 생소한 내용도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 이야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챕터일 것이다. 반면 일반 독자 중에서는 정말 이러한 일들이 기후 위기로 인해 진행될 것인가?라고 의문이 드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실은 나도 그랬다. 더욱이 저자는 과학적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채 주장을 거듭하기 때문에 몇몇은 과장된 시나리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4장에서 언급한 산불처럼 실제로 기후 위기가 고조되면서 세계 각국의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 사례들을 떠올려 보면 이 주장들을 과연 터무니없다고 무시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한국의 경우에도 얼마 전까지 안동에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는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는 못하지만, 기후 위기가 이대로 치달을 경우 지구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를 보여주는 2부는 어떤 면에서는 가장 필요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3부에서는 기후변화 시대가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현 시스템에 대한 경종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4부의 <인류 원리, ‘한 사람’처럼 생각하기>의 내용으로도 이어진다.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는 책들은 대체로 비슷한 주장을 펼쳐놓는다. 더군다나 이 책이 쓰였던 것은 1기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한 때였기에 경각심을 울리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 책도 경각심과 위기의식을 높이는 방식으로 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자기 집 창문에 빗방울이 맺혀야만 비가 내리는 줄 아는 동물이다. 아무리 친구들이 핸드폰에서 비가 온다고 외쳐도 창밖에 비가 보이지 않으면 그 말을 쉽사리 믿지 못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 경험한 것, 느끼는 것을 토대로 인지하는 것이 인간이란 동물이다. 기후 위기를 어필하기 어려운 것은 그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알아차리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 나에게도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 그리고 너무나 큰 범위에서 해결책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개인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집단이 움직여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의 투표에서 보았듯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그림을 그리면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다. 이 책은 그 점에서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면 경각심을 부추기는 12가지 시나리오를 비롯해 몇 가지 주장들은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해서 설득력을 잃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평소 기후 위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사실 이 책은 크게 흥미로울 내용이 없다. 개인 차원의 해결책이 아닌 집단, 정치의 해결책을 내세운 시각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 외에 기후 위기로 벌어질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들도 흥미를 끌지만, 결국 공포 마케팅에 그친다는 점에서 아쉽다. 다만 3부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사회의 변화들에서는 독자에 따라 몰입하게 되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기후 위기가 지속된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 궁금한 사람, 기후 위기와 관련하여 정치 부분에서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에게 좀 더 적합할 것이다.
2050년에는 정말 지구가 거주불능한 행성이 될까? 인류는 결국 기후 위기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 어떤 일들이 벌어지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상상력이 필요한 이 가상 시나리오에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좋은 자극제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