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전쟁 중에 생존해 가는 한 쌍둥이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소설이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에서는 주인공인 쌍둥이 형제가 어린 나이에 엄마의 품을 떠나 할머니의 집에 맡겨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홀로 형제를 돌볼 수 없었던 엄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맡기고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손자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전쟁통이라 혼자 생존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챙겨야 할 두 아이를 짐처럼 여기게 되고, 할머니는 쌍둥이를 ‘개자식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1부에서는 이 쌍둥이 형제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지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려 한다. 국가의 시스템이 망가진 상태에서 각자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던 사람들이 어떤 이기심과 폭력, 욕망,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드러낸다. 하지만 이걸 무겁거나 어렵게 쓰지 않았다.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쌍둥이의 시점으로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를 단순화한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데, 가독성이 좋아 아주 쉽고 빠르게 읽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도감 있게 읽혀나가는 내용은 가볍지만은 않다. 언청이라 불리는 소녀, 다른 방에 하숙 중인 장교, 마을의 신부 등 여러 등장인물이 얽히면서 때로는 아주 센 표현들이 쉬운 문장 안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몇몇 성적인 장면들은 직접적이다. 노골적이거나 독자를 희롱하듯이 적지는 않았지만, 내용 자체가 강하다 보니 성적인 내용이 불편한 독자들은 몇몇 구간에서 놀랄 수도 있겠다.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이것을 마치 극복해야 하는 과제처럼 여기며 하나씩 적응해 간다. 물론 아이들이 외부의 고통에 익숙해지겠다고 부동자세 연습을 하거나 서로의 뺨을 때리는 훈련을 하는 장면은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심지어 허기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러 음식을 먹지 않는 연습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에 적응해 가면서 오히려 이를 이용해 나가는 장면들은 흥미롭다. 어쩌면 이게 1부의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이기도 한데, 어른들의 이기심, 혹은 욕망, 혹은 어려움 앞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가는, 자신들만의 생존을 보여주는 장면이 관심을 끌어당긴다. 1부가 끝나갈 무렵에는 쌍둥이 형제가 얼마나 잘 생존하고 있고 무자비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규칙을 지켜나가고 있는지 목격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이들이 모든 일의 해결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 쌍둥이의 어머니, 그다음으로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어떤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게 1부 <비밀노트>의 내용인데,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라면 분명 그대로 책을 덮지 못하고 2부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소설의 2부 <타인의 증거>에서는 난데없이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루카스. 1부에서는 ‘우리’라고만 불렸던 쌍둥이 중 한 명의 이름이다. 루카스는 자신이 성장하고 적응해 온 할머니의 집을 지키려 한다. 그러다 그 집에 야스민과 그녀의 아들 마티아스가 함께 살게 되고, 첫사랑인 클라라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계속해서 루카스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서점 주인인 빅토르와 불면증 환자, 당 서기 페테르 등 여러 인물이 얽히면서 2부의 이야기는 확산되는데, 큰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생존기에 가깝다. 하지만 1부가 전쟁이라는 비극적 환경에 초점을 맞췄다면, 2부는 그 상흔을 안은 인간의 마음에 주목한다. 그 곪은 상처가 다양한 인물들에게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데, 흡입력 있는 이야기가 그것을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 그러다가 2부 막바지에 이르러 또 다른 쌍둥이 형제인 클라우스가 등장하고 책의 제목이 암시하고 있던 ‘거짓말’이 부각되면서 이야기는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마지막 3부 <50년간의 고독>은 일종의 진실게임처럼 진행되는 듯하다. 다행인 것은 이 책이 반전을 위해 조직적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 챕터마다 등장하는 이야기의 반전은 분명 몰입도를 높이지만, 제법 또렷하게 연결 지을 수 있는 진실과 거짓의 조각들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거짓이었는지 따져보고 사실과 허구를 연결하는 재미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거짓말을 이용하는 방식에 작가가 주목하고 있다고 느꼈다.
작년에 디렉터스컷으로 재개봉한 <더폴>이라는 영화가 있다. CG를 사용하지 않고 오랜 시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장면을 찍어낸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큰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한 남자가 역시나 같은 병원에 입원한 한 소녀에게 들려주는 허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섯 무법자의 모험 이야기로 시작한 이 ‘거짓말’은 결국 소녀를 통해 다시 남자에게로 되돌아오면서 이야기로 인해 구원을 받는다는 서사 구조를 갖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도 그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거짓말’을 이용한다.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그 거짓말이 순환 구조처럼 주인공에게 되돌아오는 순간이 이 소설의 마지막이다. 생각지 못한 또 한 번의 반전이 등장하면서 이 기나긴 서사는 마무리된다.
책을 읽으면서는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일단 재미였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소설의 내용은 꽤 쓰린데, 실제로 그녀에겐 가까운 사이의 오빠가 있었고, 소설처럼 여러 훈련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극적인 상황과 마음 아픈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쉬운 문장으로 쓴 이야기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한편으로 계속 곱씹게 되는 것이 국가라는 체계가 무너진 상황,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였다. 국가는 사람마다 다양한 욕망과 생각을 법이라는 기준점으로 통합하고, 그것을 어기지 않도록 단속한다. 하지만 그런 국가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각자의 정의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그러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소설은 그런 상황에서 인간성과 옳고 그름, 생존과 타협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비극적인 설정이 그리 머나먼 이야기가 아닌 것이, 현재에도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는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불과 몇 개월 전에는 그런 위기에 직면했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뒤집어질 수 있었고, 계엄으로 인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무너지는 새로운 상황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 비극에 빠져들지 않은 현실에 감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 언급한 ‘거짓말’의 활용법이었다. 거짓말이라고 표현되었지만 결국 허구이자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생존하고자 했던 인간의 마음, 나는 그것에 주목했다. 우리가 애정하며 읽는 문학도 결국 허구(거짓말)이지 않은가. 책에서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이야기라는 꽃은 꿋꿋하게 피어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인물에게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허구를 이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설정이 나에게는 예술과 창작의 역할에 대한 질문으로도 이어졌다.
이 소설은 저자가 긴 세월 동안 나눠서 발표한 각기 다른 소설들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원래 연작의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권으로 만들 만큼 연결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잘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편집 과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출판사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존재’와 ‘거짓말’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길지만 쉽게 쓰였고, 이야기는 흥미롭게 구성되었다. 감정적으로 조금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거짓말을 목격하는 경험은 한 번쯤 해볼 만하지 않을까. 2022년에 출판된 최신판은 672페이지의 장대한 분량이지만, 직접 읽어본 체감은 300페이지가 되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그만큼 가독성이 높고 흡입력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이 글에는 최대한 스포일러를 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서 책에 등장한 인물들의 궤적을 연결하고, 진실의 퍼즐을 맞춰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