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잘 알려졌다시피 ‘제주 4.3’을 다루고 있다. ‘4.3’ 뒤에 ‘사건’을 붙여야 할지, ‘사태’를 붙여야 할지, 아니면 ‘학살’이라고 해야 할지조차 아직 논의되지 않은 이 비극은 4월 3일이라는 날짜를 특정하고 있음에도 해방 후 미군정에서부터 이승만 정부에 이르기까지 무려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벌어졌다. 누가 제대로 알려주지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 역사를 소설이 어떻게 다루었을지 궁금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게 되었지만, 사실 한강 작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호불호가 갈렸다. <채식주의자>처럼 강렬하고 센 장면을 문장으로 구현해 낸다는 점, 그리고 소설 속 인물의 아픈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점. 이 두 가지에서 손사래 치지 않는다면 한강은 매력적인 작가로 느껴지겠지만, 사실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에는 그 개성을 끝까지 감당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채식주의자>를 읽다 도중에 떨어져 나간 독자 중 하나였다.
주인공 경하는 잡지사 일을 할 때 사진기사로 만나 이십 년 동안 친구로 지낸 인선의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는다. 제주도에서 목공소를 운영하며 지내던 인선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갑작스레 서울로 오게 된 인선은 제주도 집에 있는 앵무새들이 걱정된다며 경하에게 자신의 집으로 가서 새들 좀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몇 안 되는 친구의 부탁에 경하는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간다. 때마침 제주도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폭설로 번진 날씨를 뚫고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인선의 집을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 작품 중에도 순한 편으로 알려졌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소설에는 센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인선이 신경을 살리기 위해 몇 분마다 바늘로 환부를 찔러야 한다는 설정이다. 처음에는 이 끔찍한 설정에 한강에게도 박찬욱 같은 변태스러운 면이 있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4.3의 고통을 제주도 출신인 인선을 통해 드러내려 한 것 같았다. 실과 바늘, 환부에 대한 지속적인 통증이 있어야만 신경이 죽지 않는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이는 한강 작가 소설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녀의 글은 상징과 해석에 충실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국어 수업의 문학을 접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한강 작가의 글쓰기가 예술 영상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전편을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작별하지 않는다>에 한정된 감상일지도 모른다. 전시회에 가면 예술가들이 영상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낸 것을 보게 될 때가 있는데, 한강의 소설도 일부는 그 영상들처럼 분절된 이미지와 감정을 일정한 리듬으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흰 눈으로 덮인 산에 검게 칠해진 나무의 이미지, 이야기 사이에 끼워 넣는 내레이션, 연속된 서사가 아닌 장면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묘사들이 그러하다.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이 발생했는가 보다 그 장면의 묘사와 이미지의 구현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 것 같다. 마치 글이라는 소재로 미디어 아트를 시도한 것 같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이야기로 밀고 나가는 힘은 부족한 편이다. 더욱이 소설은 현재의 이야기와 과거의 기억, 그리고 환상이 조각조각 연결된다. 경하가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집중력이 높아졌지만, 그 후의 이야기에서는 제대로 빠져들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환상, 과거의 사건, 그리고 다른 인물의 기억까지 혼재되어 있다 보니 몇몇 부분에서는 구분이 잘 되지 않아 다시 앞으로 페이지를 넘기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4.3’에 대해서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도 ‘그래서 4.3이 뭔데?’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소설에서 기대하던 바였고, 그것을 잘 전달한 문학작품이 나오길 바랐던 터라 후반의 뚜렷하지 않은 서사와 감정 전달에 치중한 묘사에 집중력을 잃었다. 이 소설에는 내가 기대하는 것이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제주 4.3’에 대한 자료를 따로 찾아보고 난 뒤에는 소설에 대한 평이 조금 바뀌었는데, 이 소설이 애초에 제주도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제주도 안에서 ‘4.3’을 겪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역할이 무엇인가? 역사에 묻힌 사건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인가? 어쩌면 그 역할은 다른 직업군, 혹은 다른 매체가 더욱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작품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무엇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그것으로 어떤 아픔이 남았는가에 주목한 소설이다. 그 상처를 직시하고 어루만지기 위한 것. 한강의 글쓰기는 그래서 서사가 아닌 감정을 따라 요동친다. 생각해 보면 4.3이 무엇인지를 말하려고 하는 매체들은 많지만, 그로 인한 고통과 아픔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시도는 별로 없다. 이 소설이 쓰인 의도를 이해한 순간 이 책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를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작별하지 않는다>를 잘 쓰인 이야기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좋은 작품이니까 읽어보라고 주변에 쉽게 추천하기도 힘들다. 4.3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부적합하겠지만, 예술의 역할이 ‘공감’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읽어볼 만한 책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듯, 한강 작가의 책을 찍먹해 보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첫 작품으로도 좋을 것이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문학의 특성은 한강 작가의 글쓰기와 다른 지점에 있기에 취향에는 들어맞지 않았지만,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해낸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중 하나로 이 소설을 꼽을 것이다. 여전히 4.3이 무엇인지 흐릿한 윤곽선만이라도 그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