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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Jun 15. 2023

[서평] 이것은 실패한 독서다

'프리즘' - 손원평

 책의 감상평을 쓸 때마다 고민하곤 한다. 실패한 작품에 굳이 글을 남겨야 하는가? 안 그래도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 출판 시장은 어려운데 찬물을 끼얹어야 할까?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논의되는 시장이어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이 영화가 이래서 재미있네, 저래서 재미없네, 떠드는 얘기에 이끌려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처럼 책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좀 더 명료화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얻은 새로운 영감과 시각을 내 것인 양 휘둘러대다가 그중에 진짜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지 않나. 좋았으면 좋았던 이유를 정확히 찾아가는 것, 싫었다면 싫었던 이유를 정확히 찾아가는 것이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이해해 가는 방법이다. 나는 이 훈련이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고로 이번 리뷰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서평에는 스포일러에 해당할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 재미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독자라면 완독 후에 읽어볼 것을 권한다.           


'프리즘' 책 표지


 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는 참 별로라고 생각했다. 프리즘이라니. 손원평 작가가 쓴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는 정보를 몰랐다면 이것이 무엇에 관한 책인지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책 뒷면에는 ‘만남과 이별, 흩어지는 마음을 다양한 빛깔로 비추어가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프리즘을 차용했다고 적혀있다. 너무 고리타분한 비유 아닌가. 기계적이고, 교과서적이다. 책에 대한 첫인상은 그렇게 부정적으로 시작했다.      


 소설에는 총 4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2명의 연예 이야기인 것처럼 시작하지만, 뒤이어 또 다른 2명을 등장시켜서 4각 구도를 만든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과거와 현재에 복잡하게 얽혀든다. 

이 4명이 서로를 다 알게 되는 중반까지 손원평 작가의 관심은 ‘썸 타는 마음’에 있는 것 같았다. 누구의 마음이 왜,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것에 초점을 맞춘 소설처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인물을 4명이나 등장시켜 사랑의 짝대기가 이리로 갈지 저리로 갈지 갈팡질팡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그 과정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사랑, 혹은 연애를 다루는 소설이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는 작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작품은 사랑을 내세워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연애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감동을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2명에서 시작해 4명까지 확대된 사각 관계에서는 누구의 마음이 어디로 갈지가 포인트라고 보일 수밖에 없다.      

 혹자는 이런 전개와 설정에서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흔히 말하는 K-드라마(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에서 자주 접해본 설정이고, 최근 유행하는 리얼 연애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방향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까지 이렇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호불호가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꽤 흥미롭게 지켜봤다. 이런 소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고 매력적으로만 쓰인다면. 그리고 앞서 말했듯,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인생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소설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작가는 스스로 쌓아온 이 구도를 깨뜨려버린다. 정확하게는 누구와 누가 사귀게 되었다고 챕터 초반에 뜬금없이 밝혀버리면서부터다. 난 이 갑작스러운 고백이 당혹스러웠는데, 이는 연애 프로그램의 말미에 등장해야 할 결말을 중간에 보여준 뒤에 왜 그런 선택이 내려졌는지를 따라가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밝힌 뒤에 그 알라바이들을 풀어나간다면 재미있겠는가? 작가의 이 선택은 정말 의아했고, 그 뒤의 이야기를 어떻게 써 내려갈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더욱 이상하게 흘러간다. 아마 이 부분이 스포가 될 텐데, 그렇게 사귄 두 사람은 갑자기 깨지고 만다. 이유도 좀 황당하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에게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서다. 뜬금없이 사귄 것처럼, 뜬금없이 헤어진다. 사귀지 않는 나머지 두 인물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다가서게 된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엔 연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 갑작스레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인물이 등장할 수 있다. 우리도 분명 그렇게 살게 되는 순간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마음을 짚어내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방황하는 마음에 초점을 맞췄어야 한다. 하지만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갑자기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이유로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꼬여버린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캐릭터. 무려 4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신기하게 이 인물들은 모두 닮아있다. 여러 사람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고, 타인과 섞이는 자리에 간다 해도 바깥을 맴도는 아웃사이더 기질을 갖고 있다. 부모와 관련된 상처나 어린 시절의 아픈 마음이 심어져 있으며, 어딘지 비어있는 듯한 헛헛한 기분을 품고 산다. 그리고 신뢰와 관련된 이슈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재인이 호계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 뒤 굉장히 실망한다) 4자 구도의 연애 이야기를 하는 데 모두가 닮은 인물이라는 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애에 초점을 맞췄다면, ‘썸 타는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면 적어도 이 4명의 등장인물은 다양했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 똑같은 스타일의 사람이 등장하는 연애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는가?

 처음에 나는 작가가 인물의 묘사가 굉장히 생생해서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호계를 통해 초반에 드러났던 인물의 모습이 무척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작가는 자신이 잘 아는 하나의 인물 형태가 있고, 거기서 4명의 캐릭터를 파생시킨 것 같다. 그래서 4명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게 되었고, 그런 4명이 썸을 타는 다자구도를 갖게 된 것 같다. 


 그런 인물들만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들을 통해 공허한 연애란 것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생각을 못한 것 같다. 그랬다면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만으로 충분했다. 그들의 관계를 통해 헛헛한 마음, 공허한 연애를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로 무엇을 보여줄지 명확하게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4명이나 펼쳐놓고도 사건만 만들어낼 뿐 그 이상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제목으로 정한 프리즘처럼, 책 뒷면에 적은 글귀처럼, 실은 한 줄처럼 보이는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여러 가지 색을 가지고 있다고 세심하게 들춰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추측컨대, 작가는 내가 흥미롭게 읽은 딱 중반까지 쓴 뒤에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연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네 명까지 확장시켰는데, 이걸 어떻게 정리하지? 어떻게 끝을 내야 하지?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고민이다. 그 고민이 실패로 돌아간 건 처음부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이 소설이 실패한 두 번째 이유다.      

 소설의 말미에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들은 해피 엔딩을 맞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초판본 앞에 ‘사랑을 멈추지 마세요’라고 세상의 모든 사랑을 적극 권장하는 것처럼 썼는데, 정작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에게는 그런 희망을 주지 못했다. 이들의 또 다른 관계는 아마 뜬금없이, 싱겁게 끝날 것이다. 이 4자 구도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왜 이 관계를 시작했는지 정확히 모른 채 시작했다가, 어떤 마음 때문에 끝내는지도 모른 채 끝낼 것이다. 소설에서 사귄 두 명이 그랬던 것처럼.      


책 앞에 등장하는 작가의 손글씨.. 미안하지만 이 글귀와 어울리지 않는 소설이 되었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아직 읽지 못했다. 초대박 작품을 손에 잡지 못한 건 그녀의 문장이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 느꼈기 때문이다. 몇 권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독서 습관에 그 책이 끼어들지 못한 건 개인적인 취향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프리즘’을 읽으면서 좀 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나는 그녀가 정말로 프리즘처럼 등장인물의 마음을 세세히 드러내주길 바랐다. 그래서, 왜 내가 이 사람에게 마음이 갔는지, 혹은 왜 멀어지게 되었는지, 현실에서 똑같이 방황하는 독자들에게 힌트를 주길 바랐다. 하지만 손원평 작가의 관심은 거기에 없었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헷갈린다.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내가 그녀의 글과 너무나도 맞지 않거나, 혹은 이 이야기가 실패했거나. 

어쨌거나 이것은 실패한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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