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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능력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 - 필립 바구스, 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

by 퇴근 후의 서재


요즘 전 세계의 공통된 이슈는 하나다. 왜 빈부격차가 심해지는가? 부모 세대만큼 잘 살지 못하는 자식 세대들은 이에 불만을 갖고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신의 밥그릇을 사회의 경쟁자들이 빼앗아서 그런 것이라며 이민자, 외국인, 혹은 나와 다른 성별이나 다른 학력 등의 사람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다. 공정하지 못한 부의 재분배. 돈을 번 사람은 더 쉽게 돈을 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과거보다 벌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 즉,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속성이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자본주의는 문제점을 드러냈었다.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어린아이들까지 노동력으로 사용했고, 장시간 노동으로 사람들을 내몰아서 그들의 생명을 위험하게 했다. 이런 흐름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공산주의도 그중 하나였다. 자본주의의 착취적인 면모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냉전이 끝난 뒤 공산주의의 몰락은 도리어 억눌렸던 자본주의를 부추겼다.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은 활개를 쳤다. 21세기에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신용카드의 남발로 인한 부채의 문제, 그리고 2008년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던 미 금융위기가 떠오른다. 공통된 것은 신용을 이용해 빚을 내고 그것으로 소비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돈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기도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뭐든 해도 된다는 기조도 이런 흐름 속에서 생겼을 것이다.

전 세계의 부가 증가했지만 그것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고 일부에게 쏠린 이유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바로 화폐 시스템이다.



먼저 책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일단 어딘지 호들갑스러운 이 책의 기조다. 초반에 화폐 시스템의 발달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저자(들)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은행의 준비금에 관한 내용이나, 종이에 불과한 지폐가 금이나 은으로 바꿔주지 않는데도 가치를 지닌 수단으로 남아있는 현상을 대단히 놀라운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은행에 고객이 돈 100원을 맡기면 그 돈을 당장 찾아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90원을 갖고 돈놀이를 하는 이 현상, 이미 익히 알려진 현대의 금융 시스템의 오랜 역사를 대단한 사기나 터무니없는 허점인 것처럼 강조하는 태도를 보인다.


정부의 화폐 발행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더하다. 정부의 화폐 발행권이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하면서 정치인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을 근거로 삼는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세금을 늘릴 수 없으니 대신 화폐를 마음껏 찍어내는 권한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정부가 돈을 찍어내면 사회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그 돈을 마지막에 손에 쥐는 사람은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렸지만, 어떤 과정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사안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화폐 발행권을 쥔 정부가 새로운 돈을 어떤 식으로 사회에 유통하는지 나라별로 다른 그 정책 방법을 설명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건 피케티를 비판한 부분이었다.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은 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대안으로 초상위층의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에 대해 그 때문에 모두의 세금이 늘어났다고 (실제로 피케티의 주장대로 세금이 늘어났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투덜대는 모습에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나 의구심이 들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온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장되고 일반화된 주장이 충분한 근거 없이 펼쳐진다. 학자라면 그것을 입증할 자료를 내세워야 할 텐데, 그런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대충 눈치를 챘겠지만, 그렇다. 이 책은 논리력이 부족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점철되었다. 왜 그들만 부자가 되고 나는 되지 못하는지 궁금했겠지만, 화폐 발행권을 쥔 권력자들 때문이라는 답변만 듣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환율 제도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검색을 했다가 이 책을 발견했는데, 검색 결과와 다르게 환율 제도의 내용은 등장하지 않았다. (어찌 된 거야, 구글) 책의 서두에 화폐에 좋은 화폐(good money)와 나쁜 화폐(bad money)가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비유를 인용하자면 책에는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고, 이 책은 나쁜 책에 해당한다. 저자들의 논리력이 빈약함에도 스페인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와 독일의 연구소 대표라는 직함으로 공신력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할 생각을 한 것은, 이 책이 도리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었다.


대중을 선동하려는 나쁜 여론은 이 책과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복잡한 사실을 단순 일반화하고, 과장된 논리를 펼치며, 사람들의 분노를 의도적으로 끌어모은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처럼 ‘알아듣기 쉬운’ 주장들을 쉽게 접한다. 그 주장들은 대부분 내 감정을 해소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책의 저자들처럼 그럴싸한 직함이 주어지면 공신력이 생기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어쩌면 ‘그런 내용의 책이 나왔다’라는 사실 자체로 신뢰도가 높아지는지도 모른다. 이런 주장들 속에서 내가 믿을 만한 정보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스스로 반박하고 논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접한 정보가 옳은지 틀리는지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이다.


책은 그것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통로다. 정보를 소화하는 속도와 타이밍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그러하다. 다른 영상이나 직접적인 대화와 다른 점은 내가 원하는 지점에서 멈추고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를 못 했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주장을 곱씹어 볼 수도 있고, 영상이나 소리처럼 내 입에 떠먹여 주는 매체가 아니라 내가 떠먹어야 하는 매체라는 점에서도 더욱 효율적이다.


그러다 보니 결론은 현대 사회에 필요한 판단력을 키우기 위해 책을 읽자,라는 주장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보니 독서 증진을 위해 이 글을 쓴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 마무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책을 읽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스멀스멀 사라지면서 금세 가을이 다가오고 있으니 독서에도 좋은 계절 아닌가. 책이 우리의 판단력을 구원할 것이다. 이번처럼 나쁜 책을 읽더라도 우리에겐 배울 것이 남으니 어느 쪽이든 손해 보지 않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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