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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덥다고 느낀다면 서늘한 형사 추리물 한 편 어때?

<트루디텍티브 시즌4: 나이트 컨트리>

by 퇴근 후의 서재


* 먼저 언급할 것은 <트루디텍티브>라는 시리즈물은 지금까지 총 4개가 나왔는데, 각기 개별적인 이야기라 앞의 시즌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이번에 추천하려는 것은 올해 공개된 시즌4 <나이트 컨트리>다. 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트루디텍티브는 2014년부터 시작된 형사 추리물로 처음 등장했던 당시 꽤 호평을 이끌었던 미니시리즈다. 시즌1은 1995년에 벌어졌던 연쇄 살인마를 추적했던 두 형사를 2012년에 인터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당시 한국에는 덜 알려졌던 매튜 맥커너히가 얼마나 매력적인 배우인지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형사물은 특히 비주얼적으로 강렬했는데, 손발이 묶인 채 사슴뿔이 씌워진 희생자의 모습, 주인공이 경험하는 초자연적인 현상, 강렬한 살인 용의자의 등장 신 등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각인되어 있을 정도다. 유명했던 오프닝 장면은 한국 지상파의 모 드라마에서 유사하게 모방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2와 시즌3은 졸작이라고 평해도 될 정도로 망해버렸다. 그리고 아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이 두 시즌은 굳이 당신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다. 너무 심하게 망작이 되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시리즈가 된 줄 알았는데, 이번 쿠팡플레이에서 HBO 작품을 공개하면서 시즌4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얼굴에 클릭을 하고 말았다. 바로 조디 포스터다. 참고로 그녀는 이 작품으로 2024년 에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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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나이트 컨트리>의 배경은 알래스카다. 에니스의 북극 연구 기지에서 8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실종된 사건이 발생한다. 연말을 맞이 눈이 많고 밤이 긴 시기에 알래스카 경찰 서장 리즈가 몇 안 되는 동료들을 이끌고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이번 시즌의 내용이다. <트루디텍티브>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감각적인 영상과 연출이 돋보이고, 시즌1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범죄와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분위기가 이번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즌2와 시즌3도 그러했는지 언급하기엔 내 기억에서 삭제되었다.)


이번 작품의 특징은 알래스카라는 배경에 있다. 춥고 외진 지역,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밤이 아주 길다는 특징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한다. 인구가 몇 안 되기 때문에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많은데, 이런 지역에서 드러나기 쉬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를 두 명의 여성 캐릭터로 지우려 한 것 같다.


리즈와 에반젤린이라는 두 명의 캐릭터는 이번 시리즈의 또 다른 특징이다. 주요 인물로 여성만 등장한 것은 이번이 최초인데, 이 둘은 파트너 관계가 아니다. 똑같은 경찰이긴 하지만 상하관계에 놓여있고, 백인과 원주민의 후손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같은 처지임에도 종종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초중반까지 두 인물은 각자 따로 사건에 접근해 간다.


조디 포스터가 맡은 리즈란 캐릭터는 요즘 일부 미드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특징을 갖고 있다. 완전무결하거나 도덕적 흠이 없는 인물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허점도 많고 사생활에서 문제도 일으키는 인물 말이다. 이러한 주인공은 범죄 추리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시청자가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여 따라가는 드라마가 아니라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과정이 중요한 장르적 특징 때문인 것 같다. 리즈는 뛰어난 추리력을 갖고 있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 매몰차게 부하를 이용하고 관계를 꼬아버리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하거나 짜증 나게 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허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녀도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또렷하게 존재할 뿐이다.


또 다른 주요 인물인 에반젤린도 독특하다. 그녀는 원주민의 후손으로 알래스카 지역의 토착 미신이나 토착어에 익숙하다. 그래서 나이트 컨트리에 만연한 초자연적인 냄새를 더욱 짙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육체적으로 강인한 캐릭터로 젠더의 역할을 뒤집는 인물로도 나온다. 그렇다고 그게 터무니없거나 비현실적이지 않은데, 이 적당한 선이 참 좋았다. 보통 이런 캐릭터는 조금만 어긋나도 과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4 <나이트 컨트리>의 가장 큰 장점이 그것이다. 어디 하나 넘치지 않는 적당한 온도.


초자연적인 미스터리와 현실성, 그리고 인물 간의 역할 전복 등 자칫 잘못하면 이상해질 수 있는 특징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이번 시즌은 뛰어난 연출력으로 이 모든 걸 잘 어우러지게 한다. 또한 시나리오도 탄탄해서 사건의 전모와 해결까지 모든 것이 매끄럽게 만들어졌다. 보통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발생하면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지나가거나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결론짓기 쉬운데, 이 작품은 그것까지 잘 소화해 냈다. 그 점에서 특히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트루디텍티브 시즌4: 나이트 컨트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도가 높았던 형사 추리물이다. 여기에 비견될 정도로 잘 만든 작품이 최근에 있었나 싶을 정도다. 시즌1의 경우 지금 다시 보면 호흡이 느리고 어딘지 좀 매끄럽지 못한 면도 있는데, 시즌4는 속도감도 좋고 감각적인 영상을 활용한 몰입도도 높다. 서늘한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늘한 이야기. 아직 이번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눈이 내리는 이 서늘한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형사 추리물에 빠져보길 권한다. 추리를 좋아하든, 미스터리를 좋아하든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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