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함께 춤을> - 크리스타 K. 토마슨
<악마와 함께 춤을>에는 우리가 흔히 나쁜 감정이라고 판단하는 것들이 등장한다. 분노, 시기, 질투, 앙심, 쌤통, 경멸이 그것인데, 강렬한 제목에서는 ‘악마’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저자는 우리의 인생을 정원에 비유한다.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나무뿐만이 아니라 지렁이도 함께 존재하는 정원. 나쁜 감정은 지렁이에 해당한다. 꼴 보기 싫고 치워버리고 싶지만, 내 정원에는 지렁이도 있어야 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어떻게 정원을 잘 가꿔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 책이 요즘 주목받는 <악마와 함께 춤을>이다.
사실 이 접근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심리학자들은 감정에 ‘판단’을 붙이는 것을 경계했다. 모든 감정에는 각자의 쓸모가 있고,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찰스 다윈의 1872년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이미 등장한 내용이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혈액이 대근육으로 잘 흘러들어서 위험으로부터 더 쉽게 도망칠 수 있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은 생존을 위해 진화론적으로 남아있다고 본다. 그러니 감정에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판단을 붙이지 말고 감정 그 자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오래된 입장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는 접근법이 조금 독특하다. 크리스타 K. 토마슨은 심리학자가 아니라 스와스모어 대학의 철학과 교수다. 그녀는 심리학적 접근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알려진 성인이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끌고 온다. 최근 유행했다는 신스토아 학파의 철학뿐 아니라 마음챙김,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간디, 몽테뉴와 니체까지 인용한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심리학이란 학문은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이전에 인간의 감정은 철학자들이 주로 다루는 주제 중 하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 특히 자기계발서를 즐기는 독자들에게는 철학자의 접근법이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적 접근에 익숙하거나 기존에 이와 유사한 내용의 책을 읽었던 독자에게는 이 많은 이야기가 사족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는 후자였고, 굳이 이렇게까지 많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켜야 했나 의구심이 들었다. 감정 통제형 성인이니 감정 수양형 성인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논의는 충분히 진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나쁜 감정’이라고 이름 붙인 감정에 대한 저자의 태도다. 분노나 시기, 질투, 앙심 등의 감정을 바라보는 저자는 매우 인간적이다. 보통의 심리학 책들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중립적인 태도에 초점을 맞춘 반면, 그녀는 카페에서 줄이 줄지 않으면 짜증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감정에 대한 인간적 반응을 인정하는 태도는 그러니 이 감정들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말라는 책의 메시지로 연결된다. 그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감정을 직면할 것, 그리고 그대로 인정하고 느끼다 보면 그 감정은 지나가 사라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것은 역시나 여타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동일하며, 저자가 언급했던 마음챙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접근법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라는 애매모호함이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을 직면한다, 그러다 보면 그 감정은 자연히 사라진다라는 말은 듣기엔 쉽지만 실천하려는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러한 접근은 인간이 ‘나쁜 감정’들을 회피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이유를 짚어내지 못한다. 우리가 나쁜 감정을 경험할 때 직면하기 힘든 이유는 그 감정을 처리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힘든 일상에서 감정의 문제로 내적 사투를 벌이기엔 너무 벅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감정’을 발견할 때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도 하는데, 책의 주장만으로는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가 힘들다.
감정에 대한 긴 이야기의 결론이 고작 이것이었나, 허탈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것이 현재의 심리학이 내놓는 최선의 답인지도 모르겠다. 이 오래된 답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악마와 함께 춤을>은 그리 신선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다만 철학 전공자의 철학 이야기가 덧붙여진 변주일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존에 감정과 관련한 심리학 책을 접해본 독자라면 비슷한 주장을 반복하는 또 한 권의 서적으로 기억될 것이고, 아직 이런 내용이 낯선 독자라면 다양한 지식 정보와 함께 감정에 대해 풀어놓는 흥미로운 책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동안 감정과 관련하여 참 잘 정리한 대목이 있다고 느꼈는데, 특히나 군데군데 드러난 문장들은 이 책의 큰 장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감정에 대해 독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나 기타 지식 정보들로 맥을 끊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도리어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심리학에 초점을 맞췄다면 훨씬 더 매끄러운 책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쉽기도 하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내용 중 하나로 인셀에 관한 것이 있다. 한국 대중에게 아직 낯선 이 표현은 최근 넷플릭스의 <소년의 시간>이란 미니 시리즈에서 등장한 적 있다. 인셀은 원래 1990년대 한 여성에 의해 사랑에 실패한 이들이 서로 격려하던 집단이었는데, 오늘날엔 느슨하게 연계된 여성 혐오 온라인 집단의 집합체인 ‘매노스피어’의 하위 집단으로 변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면서 연애와 성, 경험 부족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 집단, 혹은 온라인 현상에 대해 감정과 연계해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는데 제법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온라인에서 일부 보이는 만큼 남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대목은 앞으로 책을 읽을 독자를 위해 공백으로 남겨둔다.
<악마와 함께 춤을>은 심리학과 철학을 뒤섞어 우리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기존에 다양한 심리학 서적을 읽었다면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접해본 적이 없다면 신선한 자극을 받을 것이다. 감정에 대한 정의나, 온라인 분노에 대한 저자의 생각, 감정이 생산적으로 활용될 때만 좋게 보는 시각을 거부하는 태도 등 좋은 내용도 많다. 그래서 이 책이 잘 쓰인 책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심쩍지만, 위에 정리한 내용에 흥미를 느꼈다면 한 번 도전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