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더 무비> - 조셉 코신스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F1 영화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귀가 솔깃했던 것은 <탑건 매버릭>의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탑건 매버릭>은 과거의 영광을 잘 리부트 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작품이다. 과거 작품과 현재의 시간 차이마저 현명하게 이용한 이 작품은 탐 크루즈의 전성기가 젊음에 기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늘에서의 속도감을 잘 잡아냈던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이번에는 또 다른 할리우드 대표 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함께 땅 위에서의 속도감을 영화적으로 보여줄 것 같았다.
여기에 뒤늦게 알게 된 것은 90년대 온갖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자 제리브룩하이머와 역시나 그 시대를 풍미했던 한스 짐머 음악 감독까지 참여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조합은 과거의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잘 만들어진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기대하게 했다.
주인공 소니 헤이스는 F2 레이서로 떠돌던 중 과거의 동료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와 재회하게 된다. F1 레이스 팀을 맡고 있는 루벤은 재능은 있지만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팀의 루키 조슈아 피어스를 이끌어줄 경험 많은 드라이버가 필요하다며 소니에게 함께 할 것을 권한다. 둘은 과거에 F1에 도전했다가 우승하지 못한 기억이 있는데, 그때를 회상하며 소니는 팀에 합류한다. 이후 영화는 미완의 팀에 노련한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가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 F1이니 F2니 하는 건 잘 몰라도 상금 레이서로 활약 중인 주인공이 트랙 위를 달리는 초반 장면은 황홀하다. 자동차 레이스, 스피드, 화려함이란 키워드를 제대로 녹여낸 연출은 관객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잘 충족시켜 줄지를 보여준다.
이 장점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대충 예상이 되는 스토리라인, 식상한 인물 구도에도 그것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속도감을 잘 구현해 낸 감독의 역량 덕분이다. 적어도 F1 레이스에서 기대하는 시각적 연출은 충족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은 이 작품을 오락 영화로 볼 것이냐, 스포츠 영화로 볼 것이냐에서 갈릴 것이다. 오락 영하로 기대한 관객이라면 잘 만든 영화 한 편 잘 봤다고 만족스럽게 극장을 나서겠지만, 스포츠 영화로 기대한 관객은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스포츠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아쉬운 점은 이 영화가 시대착오적인 20세기 감성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조금 과격하게 얘기하자면 꼰대스럽다. 주인공 소니가 위기에 빠진 팀에게 도움을 주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자신의 레이스 경험을 바탕으로 차량의 개선점을 찾아내는 것, 파티와 협찬 행사에 빠진 루키를 경기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 위기에 빠진 팀을 하나로 만드는 것. 그런데 첫 번째를 제외하면 그 방법들이 굉장히 구시대적이다. 주인공은 팀의 에이스인 조슈아에게 경기 전날 파티에 가지 말고 레이스에 집중하라고 한다. 그렇게 놀러 다니는 것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젊은 레이서가 하는 일은 주인공과 함께 앉아서 술 마시며 포커를 치는 것이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경기에 악영향을 끼치고, 안에서 노는 것은 도움이 되는 건가? 그리고 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주인공은 아침마다 모든 팀원을 데리고 러닝을 한다. 그러면 협동심이 늘고 팀원들의 기량도 향상된다는 듯이. 마치 회사 직원들과 산행을 가거나 체육대회를 하면 단결력도 생기고 업무 능력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올드한 부장님 마인드 같다. 실제로 조슈아도 소니의 이런 구시대적 방법을 보고 배워서 그대로 답습한다.
한 종목의 스포츠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팬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스포츠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이제는 정신력과 단결력을 강조해서 이길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술이나 과학적 훈련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21세기 스포츠는 이 모두를 아우른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파티에 가는 것은 나쁘고 함께 밤새 포커 치는 것은 괜찮다는 생각, 다 같이 아침마다 러닝을 하면 팀의 능력이 향상되어서 F1 레이스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는 태도는 어쩐지 시대에 뒤처진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승리 방식인데, 헤이스는 팀에 합류한 초반에 몇 가지 아슬아슬한 전략으로 팀의 승부욕을 고취한다. 이 방법은 F1 경기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객들은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전략인 동시에 편법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잘못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인식되는 장면들이다. 헤이스는 승리를 이 편법으로 이끌어가는데, 이 방법은 초중반에만 국한되지 않고 후반 중요한 장면들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바라보는 방식은 21세기 들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서 그러하다. 언제나 스포츠는 이기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고, 이는 지금도 변함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승리 외에도 도전하는 모습, 스포츠 정신, 꼭 승리에 이르지 않더라도 무형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기억해 보면 우리가 올림픽에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순간에 메달과 무관한 장면도 끼어들기 시작했다. 꼭 승리하지 못해도 끊임없이 도전한 선수의 모습에 감동하기도 한다. 스포츠 영화는 더더욱 이 감성을 건드린다. 결국 주인공이 이긴다는 결말은 빤하기 때문에 거기에 관객의 심장을 움직일 감동을 집어넣는다. 그것에 성공한 영화들은 오래 기억 남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는 잊히고 만다.
영화의 주인공 소니 헤이스에게는 스포츠에서 기대하는 이 감동의 포인트가 없다. 그는 그저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도 된다는 태도다. 관객들은 그 인물의 서사를 따라, 혹은 인물이 보여준 매력에 따라 감정이입하고 응원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놀라운 정도로 그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사실상 그가 보여주는 경기는 흔히 ‘더티 플레이’라고 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지만, 영화에서 자주, 그것도 중요한 순간에도 그는 편법에 가까운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한 승리에 관객들이 얼마나 열광할 수 있을까? 한 종목의 스포츠에 푹 빠져본 적 있거나, 한 팀을 오랫동안 응원해 본 적 있는 팬이라면 이런 승리 방식에 동의할 수 있을까?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이 승리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지는가? 내 추측이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도 꽤 많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매력은 딱 하나인데, 브래드 피트가 잘 생겼다는 것뿐이다. 그 외에 작품에서 보여주는 매력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착각에 빠진 것처럼도 보인다. 주인공이 브래드 피트잖아, 그럼 다들 알아서 응원하지 않겠어?라고. 마치 옛날 할리우드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을 만약 오락 영화로 본다면 단점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연출, 뻔하지만 매끈하게 진행된 이야기, 여기에 여전한 브래드 피트의 매력과 적재적소의 음악까지 주인공이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 F1 또한 스포츠라고 인식했던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이렇게 끝났구나, 하는 감상은 남겠지만 <탑건 매버릭>이 그랬던 것처럼 기억할 만한 영화라고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나 한 종목의 스포츠를 오래도록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의 승리 방식에 동의하기 힘들 것이고, 꼰대 마인드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빠진 팀의 모습에 함께 달려 나갈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승리의 쾌감인가, 아니면 스포츠의 감동인가? 주인공의 승부를 영민한 전략으로 보는 사람과 편법을 이용한 찝찝한 승부로 보는 사람에 따라 영화가 끝난 뒤의 평은 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