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
날이 아직은 따뜻하다는 생각에 계속 미뤄왔던 여름옷 정리를 오늘 드디어 모두 해치웠다. 여름옷이 빠진 자리에 도톰한 옷들을 정리하면서 올해의 겨울은 또 어떨지 기대도 되고, 무탈히 잘 지나가기를 소망해 보았다.
원래 집안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늘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먹고 싶지 않은데 남을 위해 해야만 하는 요리가 너무 고생스럽게 느껴졌다. 어딘가 집안일에는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는, 그런 억울함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아주 조금씩 더 익숙해지게 되고, 더 잘하게 되었다. 햇수가 쌓이면서 노하우도 쌓이고, 의외로 나만의 장기가 있는 부분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안일이 정신, 혹은 마인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내가 몸이 안 좋을 때 동생이 와서 잠깐 집안일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평소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집안을 하는 거 어때? 재밌어?”라고 물어보았다. 동생은 다른 건 모르겠고, 생각이 없어져서 좋다고 했다. 그러니까 동생은 집안일을 일종의 ‘명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유일하게 늘 좋아한 집안일이 있다. 바로 빨래 개기. 어렸을 때부터 가위질하는 걸 좋아했고, 종이접기 놀이도 좋아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각 접기“를 나는 좋아했던 것 같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집중되면서 심신이 안정된다고 할까. 빨래 개기는 묘하게 그런 행위들의 연장선 같고, 나 역시 빨래를 갤 때는 그 각 잡는 행위에만 집중하기에 다른 잡생각이 없어졌다.
다른 집안일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면 어떨까? 그런데 그게 좀 어려운 게 빨래 개는 행위가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기에 좀 더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다면 다른 집안일들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좀 정신 사납다고 해야 하나? 동생은 그런 움직임 정도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럴 때 또 써먹는 방법이 바로 음악 듣기이다. 음악을 켜놓고 움직여야만 하는 집안일들을 한다. 너무 차분하거나 조용한 음악보단 살짝 리듬이 있는 걸로. 그러면 또 일종의 명상, 그러니까 “생각 없음”이 가능해진다. 음악이 특별히 내 맘에 들면 고된 집안일을 좀 더 쉽게 해내게 된다. 결론은 내 마음도 유쾌, 집안도 상쾌!
요리는 복합적인 행위들의 조합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여전히 조금은 어렵다. 그런데 나에게는 일종의 절대미각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음식을 먹으면, 그 맛을 내기 위해 어떤 재료들이 들어갔는지 나름대로 추측해 낼 수 있는 재주가 있다. 물론 그와 같은 맛을 내기 위해 계량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는 경험이 더욱 축적되어야 가능해지는 부분이긴 하다.
그래도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그렇게 내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고, 다음에 음식을 할 때 한 번 적용해 본다. 요리 잘하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야금야금 훔쳐도 본다. 그렇게 조금씩 재미를 붙여 본다.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그러니까 먹는 양이 적다), 그렇게 나의 미각을 이용하고, 개발하는 것은 재밌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렇게 집안일을 했을 때 더 쾌적한 집안에서 더 행복해진 가족들을 보는 게 좋다. 어느 때부터인가 “집안일=희생”이라는 공식이 조그씩 지워지는 것 같다. 집안일 속에서 나만의 즐거움이나 장기를 찾으면 그것도 나름 명상이라든지, 자기계발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엄마”에 가까워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