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이어리를 사다
늘 계획대로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거기다 그 계획대로 일이 착착 풀려가는 사람들은 더 부럽다. 육아를 하면서 그런 계획성 있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해부터인가 다이어리를 계속 사고 있다. 그런데 사기만 하고 제대로 쓰질 않는 게 문제이다. 물론 새해를 맞이하고 몇 주간은 무언가를 쓰고, 계획적인 삶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다시 p의 성향대로 무계획적이 된다.
물론 나에게도 어떤 루틴이라는 게 있긴 하다. p인 것 치고 절대 어디 늦거나 하는 법도 없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계획의 수준은 극 j의 어디쯤인 것 같다. 예를 들면 30분마다 일정이 있는 그런 수준?! 그만큼 계획적인 삶을 어떤 이상향으로 정해두는 것 같다.
나를 다소 몰아붙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하다. 어쩌면 그런 성향 때문에 나름 삶의 수준이 이 정도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나의 내면 속에는 한량 같은 성향이 똬리를 틀고 있는데, 그걸 자꾸 몰아내려 한다랄까? 애초에 본성 자체가 j가 아니다 보니 그렇게 살기가 조금은 버겁긴 하다.
하여간 그렇게 또 다이어리를 샀다. 얼마나 잘 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력이라도 하려 한다는 걸 보여주는 어떤 상징 같아서 뿌듯하다. (‘아, 내년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늘 미래는 희망적이고, 기대에 부풀어 있어 좋아.
만약 내가 좀 더 j성향을 타고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룬 것이 더 많았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았으니까. 그런데 아마 내 특유의 개방감이랄까, 혹은 여유감이라는 분위기는 없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느끼는 어떤 편안한 분위기가 이런 데서 연유하는 것 같다. 아마 내가 j였다면 지금의 나 같은 사람에게서 어떤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까.
육아 방식에 있어서도 특별한 원칙이나 계획이 별로 없다. 삼시 세끼는 주고 있지만, 탄단지에 맞춰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식단을 준비하지는 못한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그렇게 준비해 줘도 아이들은 편식을 하기 마련이기에 결국 엄마만 피곤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냥 그날그날에 따른 아이들의 취향을 존중해 줄 뿐. 남편은 억지로라도 무언가를 맥이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돌이켜 보나 타인에게까지 어떤 질서나 원칙을 강요하는 건 내가 정말 못하는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내 스스로의 삶에 어떤 원칙을 세우고 계획적으로 영위해 나가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것 때문에 남에게까지 계획적으로 살 것을 종용하지는 못하겠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나의 다이어리 쓰기는 실패하고 마는 것일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정말 계획대로 살기가 힘들다는
걸 여실히 깨닫게 된다. 어느 날 불현듯 아이가 아프기도 하고, 갑자기 떼를 쓰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정말 극 j 성향이었다면 이 모든 에피소드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모든 가정일의 중심이 엄마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철이 바뀌면 옷을 정리해야 한다. 제철 채소와 과일이 언제 나오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똑똑하고 야무지게 장을 볼 수 있다. 집안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도 대부분 엄마가 제일 잘 안다. 계획적이지 않으면 모든 게 난장판이 된다.
어쩌면 다이어리는 크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그치만 아주 이따금씩 내가 좀 풀어져 있고, 해이해졌다 싶을 때 그걸 잡아주는 수단이 바로 다이어리이기도 하다. 내가 너무 생각(계획) 없이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다시 다이어리를 펴본다. (역시나 그럴 때는 다이어리가 한동안 백지이기 일쑤이다!)
징검다리 휴일이 끝나고, 앞으로 짧은 가을과 긴 겨울이 이어질 것 같다. 연말은 언제나 즐겁지만 그전까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러 집안일을 도모해야 하고, 가족들 건강도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아무쪼록 해이해지지 말기를…! 다이어리를 보면서 마음을 단단히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