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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Nov 19. 2024

시아버지의 수술

담관을 절제하다

요 몇 년 사이에 시아버지의 기력이 눈에 띄게 약해지셨다. 남편에게 가끔씩 그런 말들을 했고, 거기엔 어떤 불안감이 있었다. 평소 감이 좋고, 촉이 좋은 편인데 아버지를 뵐 때마다 마음 한 켠에 어떤 좋지 않은 예감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다 몇 주 전, 꿈에서 아버지가 느닷없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머니도 아버지와 같이 가고 싶다며 안락사를 선택하시며 졸지에 두 분을 함께 잃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안락사가 아직 불법이다.) 그러다 평소 유난히 예뻐했던 첫째가 할머니를 찾았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대성통곡을 했다. 꿈이 너무 생생했고, 그 슬프고 억울한 감정이 꿈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얼마간 이어졌다. 나는 이 얘기를 남편에게만 했다.


그즈음 아버지는 유난히 감기를 오래 앓으셨다. 어머니는 변종 코로나 같다고 하면서, 매번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아버지의 상태를 길게 말씀하셨다. 실은 어머니도 어딘가 불안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이런 적이 없었는데 자꾸 열이 나고, 회복이 더디니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채셨을 것이다.


그러다 지난 주말 아버지께서 다시 고열이 나셨고, 나는 이제 좀 큰 병원을 가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가볍게 볼 병환은 아닌 것 같았다. 고지식한 성격 탓에 일단 좀 더 기다려 본다는 말씀을 하시더니, 남편이 시댁에 가서야 그날 오후 응급실에 가겠다고 했다.


역시나 감기, 독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담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CT와 MRI를 찍었고, 담도를 절개해야 한다는 소견이 이어졌다. 그리고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배가 아픈지 2-3년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평소 아파도 잘 참고,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시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모두 60세 전에 돌아가셨고, 6형제 중 이미 4형제가 암 및 각종 불치병으로 돌아가신 것을 감암하면 그래서는 안 됐다. 평소 병원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는 어머니의 성격도 한몫했다고 본다.


내가 작년 이맘때쯤 운전을 다시 시작한 계기를 생각해 본다. 나는 그때 이미 칠순을 맞은 아버지가 그전과는 다름을 감지했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운전을 더 오래 못하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년 10월 아버지의 생신차 남해를 여행하면서 유독 피곤해하고, 잘 드시지를 못하는 모습들을 보며 아버지의 노쇠함을 깨달았다.


철이 들어선지, 마침내 아버지가 수술을 하게 되자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퇴직 후 운전을 손에서 놓으신 어머니가 가장 먼저 걱정된다. 그리고 철없는 시집 안 간 시누이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아버지는 집안의 그 두 여자를 위해 나름 듬직한 보디가드이자 운전수였다. 인터넷 쇼핑도 어머니는 늘 아버지에게 의존하셨었다.


며느리를 처음 볼 때부터 맘에 들어하셨고, 아껴 주셨던 시아버지이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처음 시집올 때 아버지의 그 듬직함이 참 더없이 믿음이 갔었다. 그래서 현재의 한없이 노쇠해진 모습이 안타깝고, 마음이 안 좋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함께한 좋은 시간들, 여행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얘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이 미래의 시점에서 보면 이미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순간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지난 시월 생신을 우리 집에서 기념한 뒤로 아프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아버지에게 생신 미역국을 제대로 끓여드린 건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어떠냐고 여쭤보니 너희 어머니가 끓인 것보다 맛있다고 하셨었다. 아무쪼록 그 미역국을 더 여러 번 끓여드릴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기를 바래 본다.


그리고 나의 불길했던 꿈이 그저 개꿈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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