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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않는 장례

어머니의 어머니의 부고

by 한박사

남편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100세를 사실까 했는데, 그러지는 못하셨다. 파킨슨 지병을 꽤 오래 앓고 계셨음에도 98세까지 연명하신 것이 어쩌면 대단한 일일지도… 피도 안 섞인 남편 쪽 직계이지만, 나는 부고 소식에 마음 한켠이 쓸쓸해졌다.


우리 시어머니는 자기의 어머니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셨다. 무언가 애증의 관계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그런 결핍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 옛날 육 남매를 키우는 와중에 풍족한 사랑이란 게 가당키나 한가? 시어머니는 내게 부고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하필 자신의 생일 전 주에 돌아가셨다며 도움을 하나도 안 준다고 원망했다.


사실 나의 입장에서 남편의 외할머니는 꽤 호감형이셨다. 내가 박사가 되기도 전에 “한박사~”라고 해주셨던 분… 옛날 사람들은 으레 그렇긴 하지만, 본인 역시 젊은 시절 똑똑하셨기 때문인지 가방끈 긴 손주 며느리를 흡족해하셨다. 우리 친정집과 지척의 거리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남편 외할머니는 내게 은근 정감이 가는 존재였다.


시아버지께서 암이 발병하신 후로 시어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은 좀 더 심해지셨다. 자기 남편도 암 걸려서 곧 죽게 생겼는데, 백세가 다 되어가는 자기 친정엄마는 죽지도 않는다고,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들을 내뱉곤 하셨다. (외할머니는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요양병원에서 보내셨다.)


인생의 아이러니인 게 사람이 지나치게 장수하다 죽으면 생각보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없다. 드디어 죽었네, 잘 죽었네, 하는 반응들이 대다수다. 특히 고인이 암이나 치매 등 간호가 힘든 병을 앓고 계셨을 경우에는 유족들이 홀가분해하는, 어떤 그런 것이 있다. 현대인들은 과거의 고려장을 야만적 풍습이라 생각하지만, 그 이면의 “늙은이가 갈 때 되면 가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니의 볼멘소리에 마음이 씁쓸해지는 이유는, 나도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수년의 시간을 자식 낳고 키우며, 내 한 몸을 희생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자식들이 내가 죽기를 바란다는, 그 서글픈 현실이랄까. 물론 너무 이른 나이의 부모의 죽음은 큰 슬픔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젊으면 그만큼 자식에게 어느 정도 필요 가치가 있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나는 시외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것처럼, 우리 부모님의 죽음 앞에선 상실과 애도의 감정에 마음 아파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부모에게 한 톨의 아쉬운 마음도 없을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나의 경우엔 고마운 마음이 더 많다. 내가 이 정도 살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절반 이상이 부모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의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한다면, 그건 그만큼 부모로서의 상호작용에서 어딘가 잘못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인자한 부모 밑에서도 뜻밖의 호로자식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확률적으로 양육의 문제로 인한 불효의 경우가 훨씬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시외할머니는 낙천적이고, 머리가 비상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자식들 대부분이 공부를 잘했고, 그 dna는 손주들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낙천성이라는 성품의 dna는 지능만큼 폭넓게 유전이 되진 않았다) 그 손주들의 자식, 그러니까 나의 자식 안에도 외할머니의 좋은 부분들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것들이 진정한 유산 상속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생전 부처님을 몹시도 사랑하신 외할머니. 그래서 파킨슨 질환을 앓으시면서도 그렇게 낙천적이셨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염원하신 극락왕생을 이루시길, 다음 생엔 그 비상한 머리로 박사도 꼭 하셨으면 좋겠다. 할머니, 이번 생 고생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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