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이 나에게 미친 영향
과거 나는 소위 “영재”에 해당했다.
그러니까 중학교 시절 지자치에서 실시했던 영재교육의 대상이었다.
당시 시험도 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정확한 선발 기준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영재교육을 받다 보니, 나는 학교 정규 교육시간이 끝난 후에도 특별수업(고등 수학 및 과학)을 받아야 했고, 방학 중에도 그 수업을 받기 위해 어느 학교로 등교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그토록 힘겨운 과제를 수행하느라 고생했겠다 싶다.
요즘엔 선행학습을 너무 흔하게 하는 것 같은데, 사실 선행학습을 하다 보면 실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해당 학년 수업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당시 같이 수업을 받던 동기생들, 혹은 선배들은 나이보다 조금 더 지적으로 성숙해 보였던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러웠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그나마 조금 위안을 받았다.
사실 그런데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나는 내가 그렇게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주 평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근자감일 수도 있지만 창의력은 그래도 좀 괜찮다 생각), 과거 나는 “영재”라는 직분이 늘 불편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여기에 대해 스트레스가 많았었다.
중3에는 학원에서 과학고 준비반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어쩐지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아 중도 포기했다.
나에게 “영재”라는 단어는 피하고 싶은 어떤 굴레 같았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내가 특별히 표현한 적도 없지만 주변 친지들은 우리 아이를 보고 영특하다거나 똑똑한 것 같다는 얘기를 가끔 한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아무리 친엄마라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직 만 두돌도 안 된 애가 얼마나 큰 영재성을 보이겠는가 싶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와 같은 주변 사람의 기대가 그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
아직도 내가 영재였다는 사실에는 크게 동의하지 못하지만, 나는 이후에도 학업을 나름 성실히 잘 수행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힘든 영재수업을 받았던 과거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애초에 이렇게 오래 공부하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영재수업을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보다 더 우수한 아이들이 많다는 자각이었다.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선 내가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어린 나이에 그런 현실적 과제들은 너무 벅찬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다 보니 좀 더 노력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의 부족함을 스스로 채우려는 동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타고난 성향은 큰 야망도 없고, 마음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유유자적”형이라고 본다. 이런 성격은 경쟁 세계에 맞지 않다. 실제로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공부하기보단 나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기 위한 자기 극복의 공부가 더 잘 맞았다.
하여간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니 그 “영재”라는 낙인이 어떻게 보면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10대와 20대는 나의 부족함, 콤플렉스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지라 솔직히 별로 행복감을 느끼고 살진 못했다. 30대가 되고 나니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고, 이젠 제법 “영재”라는 과거의 낙인을 나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낙인 덕분에 나는 좀 더 나은 현재의 자신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사실 그런 경험 없이 그냥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평범하게 내 성향에 맞는 삶을 살았다면…? 그 아까운 젊은 시절에 스트레스도 없었을 것이고 더 매력적인 나다움을 펼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쉽지만 이미 지나간 세월을 어찌할까.
이번 달엔 논문을 하나 써야 하는 과제가 있다. “영재”의 낙인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