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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Apr 13. 2022

가드닝 태교

봄이 와서 그런지 화분을 하나씩 하나씩 늘리고 있다. 보통 이 시기부터 약 9월까지 식물들은 폭풍성장을 한다. 마치 아기들이 신생아부터 돌까지 폭풍성장을 하는 것처럼(물론 엄마 뱃속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자라고 돌이 지나서도 아이들은 꾸준히 잘 자란다.) 식물들은, 특히 열대식물들은 무섭게 성장한다.


여성들이 보통 젊은 시절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30대 정도가 되었을 때 무언가(식물이든 동물이든)를 기르게 되는 경향이 생기는 이유는 역시나 어떤 모성 본능의 발현인 것 같다. 엄마들은 화분을 정말 잘 기르는데 아이를 양육하면서 맛본 성장의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어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양육이란 다른 것이 없다. 생명체가 잘 살도록 꾸준히 영양을 공급해 주고 지속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다.


임신 중기에 접어들고부터는 아가의 태동이 확연해지는데 태동만으로 봤을 때 첫째보다 훨씬 활발하고 씩씩한 아이일 것 같다. 첫째가 순하고 차분한 편이라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수월하게 한 편인데 둘째는 좀 고생 좀 시킬지도 모르겠다.


식물들도 보면 특별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스스로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까다로워 지속적인 케어가 요구되는 아이들이 있다. 박사과정 시절 연구실 창문 한켠에 있었던 호접란은 가끔 꽃대를 올려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하면서 나름 즐거운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런 호접란을 결국 졸업하고 나서 우리집에 데리고 오게 되었다. (사실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무주물의 화분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떠나면 호접란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그만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집에 온 호접란은 작년에 또 한 번 예쁜 꽃을 피어 주었다. 그런데 겨울부터 잎이 자꾸 말라가기 시작해서 계속 신경이 쓰이게 만들었다. 그러다 결국 엊그제 화분을 엎어 보니 뿌리 상태가 많이 안좋았더랬다. 급하게 물꽂이를 해주고 경과를 지켜 보기로 했다.


이렇게 호접란을 보니 나의 박사과정 시절, 그리고 이후 첫 아이를 낳고 집에서 육아를 하던 지난 날들이 차례차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지난 나의 삶의 과정에서 내 한켠에 우두커니 존재하였던 식물, 솔직히 개인적 취향으론 난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삶의 과정을 함께한 존재이기에 나에겐 참 각별한 식물 같다. 특히 호접란은 그 첫 만남이 연구실이었기 때문인지 나의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그런 면이 있다.


식물들을 키우면서 발생하는 삶의 작은 대소사들, 거기에 행복이 있기도 하고 고난이 있기도 하지만 식물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라준다. 아이를 키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절한 케어만 있으면 어느새 또 성장해 있다. 매일매일 보다 보면 그게 잘 안 느껴지지만 어느날 문득 이만큼 컸구나 하면서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집 식물들처럼 앞으로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여 무더운 한여름에 태어날 것이다. 태어나서도 한동안은 계속해서 폭풍성장을 할 것이고…


무언가를 탄생케 한다는 것, 기르는 것, 성장시키는 것, 이게 아마도 엄마가 누리는 큰 삶의 기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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