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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Mar 25. 2022

나는 왜 박사를 했을까

자발적 고행 행위

오래간 만에 논문을 읽고 쓰면서 그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나의 괴벽을 발견했다.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빠지고 마는 것.


일단 내가 어떠한 사안을 두고 있는데, 그 해결 방법이 쉽고 단순한 길이 있고 조금 더 복잡하고 조금 더 깊게 생각해야 하는 길이 있으면 후자에 끌린다는 것이다. 고생은 훨씬 많이 하지만 이상하게 그 길을 택하게 된다. 이런 것이 지적 호기심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성향이 바로 내가 박사를 하게 된 이유구나 싶다. 오늘에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왜 “복세편살’을 못할꼬.

첫째 아이가 나의 이런 성향을 닮아서 무얼 하나 해도 그렇게 집요한 건지 모르겠다. 뱃속 둘째도 엄마가 이러고 있으니 오타쿠적인 사람이 될까.


이런 거 한다고 뭐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힘들고 쥐어 짜야 하는데 이상하게 재밌어.


사실 태교 삼아 보석 십자수를 좀 했었더랬다. 몇 시간을 앉아서 하는데 여기저기 좀이 쑤셔도 재미를 느꼈다. 그러다 이렇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데 책을 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공부까지 하게 된 것이다. 임신 중엔, 더군다나 첫째까지 보면서 논문은 절대 못 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끔 배도 당기고 엉덩이도 배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많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이 시간에도 자지 않고서!) 이게 남이 시킨 거라, 혹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는 거였으면 신세한탄, 스트레스 호소가 장난 아니었을 것 같다. 근데 어디까지나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서 그런지 피곤하고 힘들긴 하지만 억울하거나 서럽거나 하는 건 없다.

  

아, 내가 이래서 박사를 한 거구나.

어쩔 수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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