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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Aug 01. 2023

둘째가 분유를 떼었다

둘째가 고민이라면

지난 주로 둘째가 돌을 맞아 드디어 분유를 떼었다. 이제 아가를 대표하는 품목 하나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매번 분유가 얼마나 남았나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남편이 분리수거 할 때마다 투덜댔던 ‘분유 뚜껑과 통이 분리가 잘 안 된다’는 말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 물론 두 아이가 먹을 우유양이 이제 두 배가 됐으니 마트에 갈 때마다 우유를 4팩씩은 사야 할 것이다. 그래도 분유 타는 것보다 훨씬 간편해졌으니 얼마나 통쾌한지…!


육아 난이도로 치자면 거의 최상급인 둘째를 키우면서 정말 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도 많았었다. (이게 정말 알 수 없는 감정인데, 그전까지 한 번도 고층에 있을 때 불안하다거나 공포스러운 느낌이 없었는데 한창 육아에 지쳐있을 때 가끔 아파트 창문을 바라보며 떨어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창문 옆으로는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내겐 다정하고 한결같은 남편, 힘들다 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시는 시부모님이 있었다. 그 덕분에 고단한 두 아들 육아를 근근이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내 삶에 아이가 둘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수정한 적이 없었다. 첫째를 낳고 키우면서 육아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것, 출산이 확실히 여자의 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여실히 실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은 확고했다. 단지 나이 때문에 혹 둘째가 생기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을 뿐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보면 아이를 원하지만 좀체 생기지 않는 부부들이 꽤 있다.) 그렇게 첫째와 마찬가지로 늘 기다리고 바래왔던 둘째였다.


둘째가 태어난 날을 기억한다. 무더운 여름날 아침 남편과 함께 유도분만을 하러 산부인과로 들어가고, 이런저런 수속 절차를 마친 후, 촉진제가 들어가고, 정오 무렵부터 미세한 진통이 시작되고, 무통 주사를 맞은 후로 급속히 분만이 진행되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봐도 첫째보다 덜 아프고, 확실히 더 수월하게 진행된 출산과정이었다. (첫째 때도 나름 순산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 첫째와 둘째를 받아준 의사 선생님들의 성함을 잊지 않고 있다. 두 분 모두에게 늘 깊이 감사드린다.


보통 둘째를 출산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생각이 첫째라고 하던데, 나 역시 둘째를 처음 본 순간에 한 말이 “형아 닮았네!”였다. (성격도 그렇게 형아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엄마가 출산하고 몸을 추스를 동안, 그리고 이후에도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둘째를 육아할 동안 엄마에게서 소외될 첫째가 짠해진다. 둘째 임신 중에도 그 마음이 항상 어딘가에 있었다고 기억된다. 그래서 어쩌면 엄마들은 첫째에게 그렇게 약한 지도…! 나 역시 첫째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어선지 둘째보다 더 잘되면 좋겠다는 맘이 왠지 모르게 있다.


첫째가 태어난 이후부터 시작해 육아만 거의 21개월을 했다. 이 정도 하니 그나마 ‘엄마’라는 사람이 갖춰야 하는 기본자세와 마인드가 제대로 장착된 느낌이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도 아이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나의 희생에 억울해하지 않는 그런 이타심, 그리고 아무리 피곤한 순간에도 아이는 절대 굶기지 않는 그 투철한 “밥 먹이기“ 정신. 꽤 오래전 봤던 추억의 미드 <에브리바디 러브스 레이몬드, Everybody Loves Raymond>에서 주인공 레이몬드의 엄마 역을 맡았던 마리가 늘 아들에게 했던 말이 “Are you hungry?”였다. 그땐 몰랐는데 엄마가 돼보니 마리의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첫째만 키웠을 땐 첫째가 세상의 육아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래서 육아가 힘들다는 말이 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힘이 든 건 맞지만 아이의 예쁨이 그 힘듦을 모두 상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진상 둘째를 키우면서 비로소 애 보느라 죽겠다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 확실히 둘을 키워 보니 자식에 대한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남자도 이놈 저놈 만나봐야 일가견이 생기는 듯이…?)


둘째를 일 년 간 키워 본 후의 또 다른 깨달음은 아이는 절대 혼자서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여러 사람의 도움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순하고 엄마가 체력이 좋아도 마찬가지이다. 엄마 혼자의 독박육아는 어느 순간 엄마를 고립시키고, 심리적으로 취약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아이는 엄마와 “어른들의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 역시 엄마 이전에는 외부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사회적으로 활동도 하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만 보고 대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꼭 육아의 부담을 나눠주지는 않더라도 주변에 엄마와 같이 밥도 먹고, 소소한 대화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엄마도 그런 수다를 떨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잘 깨닫지 못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결국 우울증이 되는 것이리라.


그래도 둘째를 일 년 키우고 나니 나에게도 잠시만의 여유가 주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렇게 브런치 글도 쓰고 하는 것이겠지.) 한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집안의 화분들도 다시 열심히 가꾸기 시작했다. 잠도 잘 자고 아픈 데도 딱히 없다. 새로운 일을 벌여 볼 궁리도 조금씩 하고 있다. 결론은 아이가 돌을 넘기면 확실히 살 만해진다는 것. 그동안 내게 다소 부족했던 ‘도움 청하기’, ‘느긋해지기’, ‘능청스러워지기’, ‘너그러워지기’ 같은 소양들이 계발되었다는 점도 어쩌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무릇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도 어딘가 아줌마 같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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