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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27. 2023

애초에 좀 힘든 애들이 있다

둘째의 돌연변이 진상 유전자

첫째는 지금 생각해 보면 천사가 따로 없었다. 어리석었던 나는 둘째를 낳으면 첫째처럼 순해서 수월하게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둘째는 육아의 매운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줄 위인이었다. 가끔 지인들에게 둘째 키우는 건 어떠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정말 사리가 나올 것 같다. 내 자식이 이렇게 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천사인 첫째와 너무 달라서…!)


<양육가설>의 저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통념과는

달리 부모의 양육이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아이들의 타고난 유전자를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내 생각에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같은 배에서 나온 두 아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아이가 성격이 좋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은 부모가 올바른 양육을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아이가 애초에 순하고 상냥한 아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부모들 역시 그런 아이에게 더욱 애정을 품게 되고, 그렇지 않은 자식들보다 편애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자식이지만 둘째는 엄마의 에너지를 더 많이 뺏어가는 자식이다. (많이 먹고, 많이 싸며, 그래서 무겁고, 힘도 세며, 자주 칭얼댄다.) 풍요로운 현대 사회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시시때때로 엄마의 생존을 위협했을지도 모르는 녀석이다. 한마디로 어미에게 “바람직한” 새끼가 못 되는 것이다. 동물들의 세계에선 이런 녀석을 어떻게 할까. 아마 되도록 빨리 독립시키려 하지 않을까. (워낙 튼튼하고 힘이 좋아 생활력은 뛰어날 것 같긴 하다.)


나 역시 둘째는 첫째보다 빨리 기관에 보내고 싶다. 여러 가지 제반 상황을 보면 그게 쉽진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기질이 강한 아이는 좀 빨리 밖에 내놔야 엄마에게나 자식에게나 좋을 것 같다. 한마디로 이런 자식은 쉽게 내쳐지게 된다. 따라서 만약 왜인지 모르게 부모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식이 있다면, 그건 부모에게 그 자식이 좀 힘든 애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양육가설>의 저자 본인이 서술하기를 자신이 부모에게 그런 자식이었다고 고백한다.)


일찌감치 부모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자식은 아마도 사회에서 종종 부당한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 둘째처럼 기질이 강한 아이들은 사회 내에서 자신의 욕구를 인내하는 법을 좀 더 힘겹게 깨우쳐야만 할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집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자주 갈등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생채기가 나며 성숙해질 것이다. 첫째처럼 좀 순했다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좀 더 험하게 가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있다. 흔히들 “기가 세다, 기가 약하다. ” 할 때의 그 기운 말이다. 둘째는 그런 면에서 기가 센 아이다. 엄마나 아빠가 그에 대적할 만큼 세면 모르겠는데, 문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둘째에게 기 빨린다.) 이 기운을 좋은 쪽으로 잘 쓰도록 유도하는 게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을 주변 상황도 살피면서 좀 조심스럽게 수용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라 에너지가 넘치고, 주변 상황을 제압하는 인격체의 실존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둘째가 내겐 버겁지만, 그에겐 내가 제공하는

환경이 어딘가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를 충족시킬 능력은 부족)


솔직히 요즘은 둘째의 칭얼거림을 한동안 냅두기도 하고, 큰 소리로 호통치며 혼내기도 한다. 이제 스스로 진정할 능력도 키워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첫째에 비하면 정말 쉽지 않은 훈육이지만 확실히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말귀를 알아듣는 듯한 느낌적 느낌. 애들도 바보가 아니라 자꾸 반복하다 보면 깨우친다.


좀 더 힘든 애들, 타고나기를 에너지가 강한 애들은 솔직히 “좋은 말”만 해서 키우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엄마의 정신건강이 피폐해질 수도 있다. 적당히 잘 맞서는 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애들은 맷집도 꽤 있거든.) 나는 생전 내 목소리가 좀 작은 편에 속한다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둘째로 인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그동안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없이 살아와서 그랬구나!’ 빙고~!


어쩌면 나는 둘째로 인해서 좋든 싫든 조금 강해지고 터프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내 모습이 어쩔 땐 좀 낯설기도 한데, 이 역시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어떤 숨겨진 부분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으면 좋은 점이 이렇게 내가 모르는 나를 알게 된다는 것.


아무튼 둘째는 내게 늘 어려운 숙제이고, 어떤 면에서는 전생의 업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런 녀석을 벌써 1년 동안 알고 지냈다. 그래서 둘째 너는 언제 순해질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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