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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26. 2023

어떻게 나에게 유리하게 할까

시댁과 잘 지내는 방법

첫째의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자, 시부모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첫째를 시댁에 데리고 갔다. 두 아이 육아를 하다 한 아이만 육아하다 보면, 애기 하나 보는 건 정말 ‘식은 죽 먹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나는  약 2주간 나름 휴가(물론 둘째가 진상이긴 하지만)를 얻은 셈이다.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시댁은 이렇게 시시때때로 나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신다.


유부녀 박사님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시댁에 불만이 어느 정도는 쌓여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보통 입 다물고 그녀들의 성토를 잠자코 듣고 있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나름 유머를 한답시고 시댁이 그렇게 힘들다면, ”어떻게 나에게 유리하게 할까. “ 한 번 고민해 보시라고 했다. 아마도 그냥 말장난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것 같은데, 나름 나는 진담이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시작이 좋은 편이었다.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남편이 아무리 좋아도 나는 결혼까지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혼해 보니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마음에 들어 하면 시아버지는 자연스레 시어머니를 따라 며느리를 좋아하게 된다. 하여간 남편도, 시어머니도 나에게 매우 우호적이었으니 나의 결혼은 스타트가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시작이 좋아도 실전은 또 다를 수 있다.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시작하는 결혼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 맞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나 역시 시댁과 어느 부분에서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됐다. 그럼 이럴 때는 어떻게 한다? 맞는 부분에만 집중하면 된다. 굳이 안 맞는 부분을 부각시켜 서로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사실 이건 비단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유효한 전략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신하고 아주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하신다. 나름 긍정적인 착각 아닌가. 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쾌적한 관계가 조성되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해야 잘 어우러지는 법이다. 나는 시댁뿐만 아니라 친정에서도 굳이 내 개성을 부각하려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가족 관계에서는 적당히 묻어가는 게 상책이라는 걸 언젠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게 해보면 생각보다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첫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시댁에 아주 조그만 호의라도 감사를 표현했다. 이게 다른 게 아니라 그저 ”립서비스“이다. 남편은 아무래도 친자식이다 보니 부모님의 그런 배려와 호의를 당연시하고 시큰둥한 편이다 보니 나의 그런 립서비스는 더욱 빛이 났다. 반찬이 맛있다고 자주 얘기하니 더욱 자주 만들어 주시고, 늘 감사하다고 하니 더욱 많이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첫째가 태어났다. 시댁도 처음엔 손주의 등장에 낯설어했다. 당연한 것이 그건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갑자기 모성애, 부성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니까.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애정이란 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불현듯 생겨난다. 즉 직접 아기를 키워 봐야 아기가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첫째를 맡겨야 할 상황이 오면 늘 시부모님에게만 부탁드렸다. 친손주라지만 직접 봐야 정이 들고, 사랑이 싹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혈연관계에서 오는 믿음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다.)


실제로 시부모님은 첫째를 육아하면서 첫째를 거의 자식처럼 애지중지하게 됐다. 틈만 나면 첫째를 보고 싶어 했다. 시댁의 손주 사랑은 뭐다? 엄마의 육아 부담 경감이다. 그렇게 시댁과는 매우 순조롭게 공동육아를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둘째도 나름 빨리 갖게 되었다. 만약 시댁의 적절한 도움이 없었다면 (진상이긴 하지만) 사랑스러운 둘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시댁에는 매일 감사하지만, 앞으로도 늘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감사해야 할 일이 계속 생기도록…?)


그리고 오늘도 열심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온갖 애교를 떨면서 점수를 따고 있는 우리 첫째에게도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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