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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25. 2023

너 왜 우리딸 괴롭혀!?

친정에 가니

지난 주말 여름휴가 겸 친정에 갔다. 가는 김에 2박 3일 정도 머무르고 올 예정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친정에서 이틀 이상 묵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기가 있으면 밖에서 자고 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가 어느덧 많이 커서 이제 이유식도 끝나고 기저귀 가는 횟수도 줄어들었기에 짐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두 녀석들도 차에서 보채는 행동이 눈에 띄게 많이 줄어들어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친정에 갈 수 있었다.


남편이 운전이 지루해질 법한 때에 나는 주특기인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주제는 내 어린 시절 이야기. 갑자기 돌아가신 지 꽤 된 외할머니가 떠올라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외할머니가 참 무서운 분이셨다, 엄마의 강하신 면모는 그녀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블라블라… 특히나 외할머니가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는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너 왜 내 딸 괴롭혀! “ 아마도 외갓집에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와중에 외할머니가 그걸 보고서 그렇게 나무랐던 것 같다. 조부모님들은 보통 손주들을 더 이뻐하지 않나? 하여간 그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까지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친정에 도착해서도 나의 육아는 끝나지 않았고, 진상 둘째는 여전히 엄마에게 보채는 걸 멈추지 않았다. 중간중간 친정 엄마, 아빠가 끼어들어 손주들과 놀아 주기도 하고 얼러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엄마가 해야만 하는 육아의 몫이라는 게 있었다. 그러다 아빠가 둘째의 진상짓을 보다 못해 “너 왜 우리딸 괴롭혀! “라고 장난조로 둘째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말귀를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눈치로 자기 행동을 저지할 줄도 모르기 때문에 그 말은 어디까지나 쇠귀에 경읽기였다.


그런데 그때 나는 과거 내가 엄마에게 했을지도 모르는 투정 및 보챔이 상상되었다. 아마 나뿐 아니라 우리 4남매 모두 적지 않게 엄마를 괴롭혔을 것이다. 외할머니에게는 손주가 이쁜 건 둘째치고 육아에 지친 딸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물론 외할머니도 손주의 아직 철들지 못한 보챔도 당연히 이해가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고됨이 안타까운 것이다. 나는 아직 손주를 보진 못했기 때문에 조부모의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과연 딸자식과 손주 중 누가 더 예쁠까? (하긴 나는 딸이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식구들을 배웅하며 엄마는 네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편인데, 지금 상태도 친정엄마가 보기엔 고되게 보이나 보다. 하여간 친정 부모님의 그런 공감과 배려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 역시 우리 엄마, 아빠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육아가 고되다 느껴질 땐 거꾸로 나 역시 누군가(보통 엄마)에겐 그만큼 고된 노동을 요구하는 아이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 사는 게 다 똑같지, 다들 이런 때가 있는 거지, 하면서 이 상황에 좀 더 초연해지려고 노력한다. 거기다 나에겐 아직도 딸을 걱정하고 짠해하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가. 이 상황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힘들어도 어찌어찌하면서 하게 된다.


나란 사람이 이렇게 씩씩하게 육아를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나의 부모님이 씩씩하게 육아를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우리 부모님은 참 용감하게도 사남매를 키우셨다. 나는 당연히 기억할 수 없지만 그들도 아마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그랬으니 외할머니가 손주들을 나무랐겠지 싶다. 하여간 나에게도 이젠 그런 든든한 친정아빠가 있다. 친정아빠 역시 둘째딸을 얼마나 예뻐했던가.


그래서 우리 둘째 역시 나중에 외할아버지를 무섭게 기억하려나. 하지만 사실 외할아버지는 둘째를 꽤 이뻐한다는 반전. (엄마를 닮았는데 남자답다고 좋아한다.) 하여간 외할머니와 친정아빠가 자신의 딸들에게 했던 말의 우연한 일치가 반갑다. 돌이켜 보니 엄마도 나도 든든한 친정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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