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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Aug 17. 2023

남편이 싫을 때

엄마도 돌봄을 받고 싶다

아무리 좋은 사이더라도 가끔 못마땅할 때가 있는 법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자식조차 맘에 들지 않을 때가 많은데, 나랑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존재인 남편이 미울 때가 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유부녀들은 어느 순간 남편을 “첫째 아들”로 여기게 되는 때가 있다.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을 지속적으로 챙겨주고, 철없는 행동들을 나무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했을 때이다. 남편 역시 두 아들처럼 조금 지저분하고, 편식을 하며, 꼼꼼하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뒤치닥 거리는 모두 나의 몫. 게다가 아이들이 서서히 크면서 육아의 부담이 줄어들자 남편은 어느 순간 슬그머니 그 육아를 나에게 많이 떠넘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좀 버거운 듯하여 도와준 거라면, 이젠 너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 같다는 듯이…


솔직하게 말하면 이젠 육아가 이전만큼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남편이 이제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서운하긴 하다. 물론 아직도 육아 외에 살림의 많은 부분들을 도와주고 있는 남편이지만 새벽에 혼자 일어나 둘째 분유, 우유를 챙겨주는 일을 꽤 오래전부터 나 혼자만 했다는 깨달음에 이르면 조금 약이 오른다. 식사 시간엔 거의 매번 둘째 먼저 밥을 맥이다 보니 늘 식은 밥을 먹기 일쑤인데 그럴 때 느긋이 밥 먹는 남편 모습이 참 얄밉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참 밥맛이 없다. (식당에서 아이가 어린 젊은 부부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빠들은 확실히 엄마만큼 육아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 남자의 성향 자체가 육아의 섬세함, 꼼꼼함을 충족시키기 힘든 점도 많고 애초에 ‘누군가를 돌보는 일’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결국 남편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들 모두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엄마의 몫으로만 남게 된다. (정말 딸을 안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물론 남편이 열심히 사회 생활해서 가족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하루하루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집에 오면 쉬고 싶은 마음만 간절할 것이다. 보통 아이가 없거나 미혼인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서 쉬는 날들의 반복이다. 그래서 가끔 삶이 무의미하단 생각도 드는 것 같은데, 일단 아이가 생기면 그 “쉼”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진다. 나를 돌보는 여유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요즘 갑자기 다시 가드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둘째 육아가 좀 수월해진 영향인지도…!) 특히 난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내가 갖고 있는 호접란 하나가 나의 박사과정 시절을 늘 나와 함께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좀 어설프게 나 자신의 정신분석을 해보면, 내가 화초를 돌보는 행위 자체는 나를 돌보는 행위로 환원시켜 볼 수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나를 누가 돌봐주지 않지만 화초에 나를 대입시켜 내가 그 대상을 돌보는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치유 방법이다.


그러고 보면 남편이 미운 이유가 결국은 나를 돌봐주지 않는 것 같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아이들 때문에 남편을 잘 돌봐주지는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육아를 하다 보면 어느 날은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왠지 서러움이 밀려온다. 엄마의 삶이 서글픈 것은 그런 것 때문이다. 엄마에게도 어느 시절 돌봐주는 누군가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돌봄을 내가 타인에게 쉴 새 없이 해줘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돌봄을 받지 못하고.


둘째가 독감에 걸렸다. 이는 즉 엄마의 수면 시간에 줄어들고, 며칠은 마음고생을 한다는 말이다. 이런 엄마의 고생은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고, 그 피곤함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지 못한다. 이런 희생이 자꾸 내면화가 되면 진정 보살 같은 엄마가 되는 것일까. 이런 우울한 생각이 들 때 집 안의 화초들을 지긋이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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