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통분만의 부작용(?)
한 달 전,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팠다. 시작은 미미한 두통이었고, 곧 참기 힘든 두통과 발열 증상이었다. 그러다 2, 3일이 지나서는 소변을 볼 수 없었다. 내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신경과를 전전했다. 그러나 의사들도 병명을 정확히 기술하지 못했고, 원인 또한 집어내지 못했다.
의외로 이 병의 실마리는 한의원에서 얻어낼 수 있었다. 일단 한의원은 그 특성상 환자와 꽤 오랜 시간 내담시간을 갖는다. 나는 그동안 아팠던 경과와 이에 대한 나의 소견 등을 얘기했고, 평소의 식습관이나 생활 여건 등에 대해 얘기했다.
소변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은 자율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랬더니 한의사 왈, 발열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바이러스 감염이 있었던 것 같으며, 그 와중에 척추나 목뼈 등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뇌리를 스친 것은 비뇨기과 의사의 다음과 같은 소견이었다. 혹시 최근에 허리나 척추에 마비 증세나 디스크 등이 있었냐고..
다시 먼 과거를 반추해 보면, 나는 첫째와 둘째 출산 때 모두 무통 주사를 맞았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주사는 허리 부근의 척추뼈에 처치되며, 아주 미세하지만 주사가 주입되는 과정에서 어떤 불쾌한 감각이 잠깐 느껴진다. 모든 외과적 시술 혹은 수술에는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 무통주사 역시 예외는 아니고, 이 역시 병원 측에서 주사를 놓기 전에 충분히 고지를 해준다. 근데 사실 너무 아프니까 그냥 ‘별일 없겠지.’ 하고 빨리 놔달라고 하는 게 대부분의 출산 중인 산모들의 일반적인 모습일 것이다.
각설하고, 결론적으로 나의 병은 한의사의 진단대로 바이러스 감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가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무통주사가 이루어진 척추의 미세한 틈에 침입하면서 신경을 건드린 것 같다. 이 신경을 타고 머리에까지 침입하면서 머리가 너무 아팠던 것 같고… 어떤 식으로든 뇌의 신경에도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도…
그 한의사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명의이다. 환자가 자신의 몸과 병이 난 이유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을 얻는다. 그래서인지 그 한의원에서 지은 보약을 열심히 더 잘 챙겨 먹었고, 이젠 제법 기력을 좀 회복한 듯하다.
아직도 신경과 약은 먹고 있고, 살짝 하반신의 감각이 그전처럼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래서 유일한 걱정은 이 후유증이 평생을 이어질지 하는 것이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온몸이 망가진다고 하던데, 그게 그저 옛날 의료 여건이 부족했던 시대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출산은 여러 모로 산모에게 이런저런 상흔을 남기는 법이다. 암컷의 숙명인가.
그래도 다시금 건강을 회복하고, 아이들을 다시 잘 돌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아이들이 튼튼하고 건강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엄마의 마음인지도..
한편 그렇게 힘든 투병 와중에 친정엄마가 매일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고, 한약을 지어주시면서 그렇게 본인의 자식을 알뜰하게 챙겨주시기도 했다. 엄마가 없다면 얼마나 마음이 공허할까.
두 아들을 낳고 키우는 건 참 힘들다. 그래도 그들이 주는 행복감을 생각해 보면 나름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좀 더 얻는 게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좀 더 건강에 신경을 쓰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