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정님 씨는 강화도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행정구역 상 인천광역시에 속하지만 옛날에는 경기도에 속한 강화군이었고,
강화도에서도 서쪽 끝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이십여 분 들어가야 하는 석모도.
그 석모도에서도 아래 끝 매음리가 정님 씨 고향이다.
지도에서 보면 민머루해수욕장 앞 되시겠다.
십 대 일찌감치 인천으로 도망쳐 나온 정님 씨는 이후로 주욱 인천에 살았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인천에 살면서 어느 사이엔가 슬며시 고향이 바뀌었다.
50대에 부천으로 이사했지만 정님 씨는 여전히 본인 고향을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 아버지의 고향을 말한다.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하는 건 정님 씨가 본인 고향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십 대 때부터 인천에 나와 생활하면서 강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아주 안 좋은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억세고 드세며 저밖에 모르는 못된 사람이 많다고 인천 사람들이 말한다며 그래서 정님 씨는 본인 고향을 숨긴다고 했다.
보문사와 멋진 해안 도로로 유명한 석모도.
보문사 가까운 민머루 해수욕장 앞 동네가 정님 씨 고향인데 사실 나도 몇 번 못 가봤다.
서늘한 동굴 속 불상과 가파른 108 계단 끝 마애 석불로 유명한 보문사는 서너 번 다녀온 것 같은데
힘겹게 욕하면서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보는 바다 풍경이 참 멋졌던 것,
보문사 입구 아래 밴댕이회와 인삼 동동주가 매콤하고 달달하면서도 독했던 것,
밭일하시는 외할아버지 옆 축사에서 동동주에 취해 벌건 얼굴로 순둥 소에게 콩깍지를 들이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멋진 고향을 두고 정님 씨는 왜 말을 못 할까.
사람 거칠고 드세며 못 된 건 지역에 상관없는 일인데.
나는 엄마 고향이 이렇게나 정겹고 좋은데.
볼 것 많고 맛난 것 많고 풍경도 이리 멋진 강화라서 석모도라서
무엇보다 나의 엄마 정님 씨가 태어나 자란 곳이라서 강화가 좋은데.
그래서 나라도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들란다.
울 엄마 고향은 강화 석모도예요.
보문사 밑 민머루해수욕장 앞 동네예요.
정님 씨는 어릴 적 민머루에 나가 조개도 캐고 굴도 따고 그랬어요.
외할아버지는 배 타고 나가 새우도 잡고 물고기도 잡아 왔어요.
정님 씨 어릴 적엔 지금 북한 땅인 연안 쪽으로 나가 물물교환도 했대요.
바다 위 뱃사람한테 김치 가득 만들어 가지고 가면 값비싼 물고기랑 바꿔줬대요.
지금 정님 씨 고향엔 큰 올케와 외종질이 살고 있다.
외할아버지도 외삼촌도 돌아가신 지금 석모도는 더 멀어진 것 같다.
이제 팔십둘 정님 씨는 요즘 고향 집에 다녀오고 싶어 하신다.
조만간 한번 날을 잡아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