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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ug 29. 2023

나는 사랑 많이 받고 자랐어

엄마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

  내 앞에 앉아서 카페라떼를 마시던 진희가 말했다. 유년시절 엄마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며 그 사랑 덕분에 회사를 다닐 때에도 마음 한켠이 든든했다고 한다. 결혼해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삼십 분 안에 달려와줄 엄마아빠가 있고, 아플 때면 친정으로 바로 달려가 엄마의 간호를 받으며 진수성찬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엄마아빠에게 한없이 감사하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공주같이' 된 건 모두 엄마아빠가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어디가서도 대접만 받으며 살아라, 하면서 예쁘게 키워줬기 때문이라는 말로 그녀의 말은 끝이 났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돈 건 "사랑을 많이 받다"는 표현이었다. 사랑을 받는 주체는 나 자신이며 그 사랑을 퍼붓는 이는 나의 부모. 이 수식 속에 내 경험이 끼어들 곳은 없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나는 엄마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도 한 적이 없으므로 우리는 동점일까?


  나는 내가 엄마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 사실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해도 될 것도 같은데 그렇게 쓰면 영유아 시절의 기억까지 엄마가 끌고와 소리칠까봐(엄마는 이 글을 읽지 못하지만) 다소 완곡한 표현을 쓰기로 한다.

 

  아무튼 그렇다. 엄마에게 달콤한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보드라운 스킨십을 느껴본 일 또한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대할 때는 대체적으로 무표정이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딸의 눈을 피하는 엄마가 이상했다. 일부러 엄마 눈을 더 쳐다보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 눈빛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손주가 태권도 학원에서 품띠를 땄다는 이야기에도, 마트에 갈 건데 엄마는 필요한 게 없냐는 나의 모든 질문과 대화에, 엄마는 눈을 피했다.


  딸을 바라보지 않는 엄마.


  그런 엄마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 유년시절이 정서적으로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난 엄마의 뒷모습을 많이 보며 자랐다. 함께 장을 보고 올 때도 엄마는 앞서 걸을 때가 많았다. 엄마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집에서는 부엌 씽크대에 서있거나 아니면 티브이 앞에 앉아 있었다. 엄마와 마주보며 앉아 있던 오후는...없다.


  엄마가 나와 이야기 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2년 전쯤 깨달았다. 아니, 깨달았다는 말보다 인정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전에는 넌지시 느꼈지만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겠다는 과감한 시도였으니 말이다.


  그후로 나는 엄마를 보러 자주 가지 않았다. 이전보다 훨씬 엄마가 멀게 느껴져서다. 엄마와 나 사이에 아무리 좋은 이야기가 오간다 해도 우리의 말들은 차가운 접시 위에 올려진 고기 같은 것이다. 차가운 접시 때문에 이내 금방 고기 기름이 하얗게 굳어버릴, 고기. 맛대가리 없고 건강에도 좋지 않을, 그 고기를 굳이 계속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이 있기 전에도 엄마와 나는 자주 소리치며 싸웠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이해해주거나 공감해주지 않으면 나를 맹공격했다. "니 아버지랑 똑같아"라면서. "으이구, 지겨워 지겨워! 지겨워!" 하면서. "다들 왜 나한테만 이러니? 살기 싫어 진짜." 라면서. 그래서 한때 난, 엄마가 스트레스로 죽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 했다. 저러다 정말 쓰러지면 어쩌나, 스스로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하면서 두려워했다. 부모의 죽음을 걱정하느라 늘 조마조마했다. 이런 순간에 내 행복을 찾는 건 얼토당통한 얘기였다. 엄마는 아빠에게 화난 것도 내게 화를 냈고, 시누이나 동서 때문에 화가 난 것도 내게 화를 냈다. 지긋지긋했다.


  우리 엄마는 아빠를 싫어했고 동서를 싫어했고 올케와 시누이도 싫어했다. 엄마가 좋아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엄마는 오빠를 제법 좋아했으니, 아무래도 하나뿐인 아들만이 엄마의 유일한 버팀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연락을 안 한 지 몇달째다. 일부러 안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유난히 더운 날, 유난히 비가 많이 온 날은 엄마 생각이 자주 난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 건지 안부가 궁금하다. 그러나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나면 내 마음이 너무 약해지고 말아서, 전화를 걸지 못하는 거다.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이토록 힘든 일이다.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마음 그릇은 다른 사랑으로-가령 남편이 주는 사랑-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가끔 어떤 밤은 텅 빈 그릇소리가 처연하게 울려퍼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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