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Aug 13. 2023

땅이란 게 말야, 정말 신기하네

도시인의 텃밭일기 2 : 초록 고추, 빨간 토마토 수확기

도시인의 텃밭일기 1 :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

  텃밭에 일곱 가지의 채소가 자라는 동안, 나는 감자가 옆 라인의 키 큰 옥수수를 불편해 하지 않을지, 토마토 옆에 고추가 있어도 되는 것인지를 헤아리려 애썼다. 가지를 쳐줘야 남은 가지가 건강하게 자란다는데 멀쩡히 잘 크고 있는 가지를 자르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잡초가 무성히 자라던 날에는 잡초를 뽑기가 힘들었다.


  저도, 살려고 태어난 앤데... 별 감수성이 내 발목을 다 잡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잡초는 점점 더 무성해졌고, 나는 잡초 뽑기에 둔감해져갔다. 이놈시키 또 자랐어! 하면서 낫으로 잡초를 뽑아댔다. 이게 케일인지 초록색 망사스타킹일지 모를 만큼 구멍이 뻥뻥 뚫린 케일을 보고는 해충을 박멸한 온갖 방법을 밤새 뒤져보고는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어쩔 수 없는' 마음 같은 걸 배워갔다. 버릴 건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내가 물을 흠뻑 주고 온 다음날 폭우가 쏟아지면 이 또한 자연의 섭리겠거니 하는 의연함도 조금씩 갖게 되었다.


  자연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걸 깨닫고는

  타인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잘 보이려 애쓸 필요도 없고 내가 읽었다는 상대의 요구와 욕구가 정답이라는 확신도 내려놔야 했다. 내가 아닌 그 모든 것(사람)은 그것의 속도와 기준으로 흘러가리란 뻔한 진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무 대답 없는 땅과 그 속을 볼 길 없는 땅 밑의 일들을, 나는 왜 자꾸 궁금해 했을까.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더 잘 자랄 줄 알아서.

  내가 좀 더 신경쓰면 더 잘 될 줄 알아서.

  나는 부족한 나를 다그치면서

  부족한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숱한 걱정과 예상을 머릿속에 짊어지고 살았다.

  그것은 제법 맞았겠으나, 꽤 많이 틀리기도 했을 것이다.

  맞았던 것만 기억하고는

  내 말대로였다고 자만하지는 않았을까.


  무성한 잡초와 강렬한 해충의 공격 속에서도 고추와 토마토는 제법 무던한 성격들이었다. 잘 자라서 풍성한 식탁의 식재료가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푸르고 빨갛게 곱고 예쁘게도 컸더라.


  무성한 외부 자극과 강렬한 부정적 감정 속에서도 나도 무던하게 커야겠지.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반복해 내리면 땅 깊은 곳에서 내 발밑을 쑥쑥 밀어 올릴 거다. '키우는 법'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자라는 것'이라고 속삭이면서. *

매거진의 이전글 어째서 잘 자란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