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 카드 데이

불행한 날 꺼내 쓰는 운수 좋은 날

by 오글오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눈앞에 왔다. 앉아서 갔다. 전철도 금방 왔다. 여기도 앉아서 가는데 팔걸이 쪽 자리라 편하게 졸았다. 걱정하던 업무가 어찌 저찌 마무리됐다. 성공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게 딱 한숨 돌릴 정도. 말 한마디와 작은 친절로 동료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냥 이 사람 싹수없지는 않구나 정도. 야근했지만 9시 전에 퇴근했다. 그래서 12시 전에 집에 와서 안 쓰던 글도 써본다. 집에 오는 길에도 전철이 금방 왔다. 버스가 바로 도착했다. 그게 뭐 큰 행운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 정도만 되도 참 고마운 하루다.


이런 날이 많았다. 몇 걸음 차이로 버스를 떠나 보낸다. 배차 간격마저 길다. 승객이 많아 땀 뻘뻘 흘리며 서서 갔다. 전철에도 자리가 나지 않아 결국 2시간 가까이 서서 갔다. 내 바로 옆은 두 번이나 자리가 났다. 누구 놀리듯이. 회사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눈치가 보였다. 야근도 긴 편이었다. 오는 길에 역시 전철을 한 계단 차이로 놓친다. 버스도 물론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늦은 밤 침대에 눕지만 잠을 설친다. 잠들만 하면 바깥 소음에 화들짝 깬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뭔가 불행한 날, 버릇처럼 하는 생각이 있다. 난 항상 이 모양이다. 가진 거 쥐뿔도 없는 게 운도 지지리 없다. 정말 이런 날만 잔뜩 있을까. 이성적으로 찬찬히 돌아볼 여유는 갖기 싫었다. 왠지 내 인생을 싸잡아서 비하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일도 그런 날일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을 기록했다. 매일 뭣 같지 만은 않으니 화 가라앉히라고. 일종의 옐로우 카드처럼 꺼내고 싶었다. 안 그래도 별거 없는 인생 선처 한 번만 해 달라고.